<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선불교 미학과 마크 토비

폴록은 윌라드(Willard) 화랑에서 마크 토비(Mark Tobey 1890~1976)의 <하얀 글씨 White Writing>를 본 적이 있었다.
토비는 폴록의 전 세대지만 그의 <하얀 글씨>가 나중에 알려진데다 일, 이차 대전 사이에 유럽과 중국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뉴욕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40년대에 뉴욕에 자신을 알렸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워싱턴 주의 시애틀에서 보냈기 때문에 뉴욕의 예술가들과는 자연히 교류가 적었다.
그는 1942년에서 1955년 사이에 뉴욕에서 모두 스물다섯 차례에 걸쳐 자신의 그림을 소개했고, 그래서 늦게나마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의 명단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자주 사용한 하얀 선들은 동양의 글씨처럼 우아했다.
그는 폴록이 기대하던, 캔버스 전체를 구성하는 올 오버 화법을 벌써 실천했으며 폴록은 그의 그림에 감동했다.
그는 1918년에 인류는 하나라고 가르치는 종교 바하이(Bahai) 신앙을 받아들였고, 1923년에는 중국 회화를 연구했으며, 1934년에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선불교를 직접 배웠다.
그의 미학은 바하이 교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서 1962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종류의 종교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여러 종류의 이름들에 불과하며 오로지 하나의 종교가 있을 따름이다.
모든 종교의 뿌리는 바하이의 견지에서 본다면 세계와 인류가 하나라고 주장하는 이론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고는 그의 그림의 주제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회화적 구성에 관해 “나는 모든 부분들이 한 곳으로 집약되지 않고 그것들이 상호관련을 가지는 가치를 지니게 한다”고 말했다.
인류가 하나라는 그의 신앙은 무수한 작은 선들과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시각화되었다.
폴록과 드 쿠닝 그리고 클라인이 온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들의 팔을 크게 움직이면서 그림을 그렸다면 토비는 손목만을 움직이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하얀 글씨들은 1935년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모든 개인적인 요소들을 제거한 순수한 명상의 세계로 관람자들을 초대했다.

3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사람과 풍경을 사실주의적 방법으로 설명하듯이 그렸다.
그러다가 1935~36년부터 추상에 관심을 가지고 힘있는 하얀 선들을 사용하여 알아볼 수 있는 형태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흐르는 듯하면서도 율동적인 선들은 그가 운동에 대해 연구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들은 더욱 추상화되었다.
남은 평생 동안 그는 캔버스를 삼차원의 공간처럼 운동들로 채우면서 빛과 율동들이 어울리는 우주적 세계를 펼쳤다.

1942년 토비가 그린 <형태는 남자를 따른다 Forms Follow Man>는 달라지고 있는 추상의 증거물로 충분한 작품이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언제까지 계속해서 이러한 흰색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 방법은 소심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긴장감을 주며, 너무 요구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1947년에 그린 <우리 세기의 섬광 Blaze of Our Century>에도 무수한 하얀 점들이 검은 종이 위에 전체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근래 도심의 빛나는 불빛 같기도 하고 이차대전 때의 붕괴되는 도시의 화염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얀 점들 안에 있는 몇 가지 형태로서 붉은 입술처럼 빛나는 형태 및 수평과 수직으로 구성한 기다란 파란 막대기들은 도시의 밤에 나타나는 형태들인지 전쟁에 살아남았던 잔존자들을 상징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유령처럼 보였다.

50년대에 그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도시의 긴장감과 쉼없는 동력주의를 표현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그는 <명상 연작 Meditative Series>에서 온화하고 고요하며 시적인 우주적 차원의 그림들을 그리기도 했다.
그가 1957년에 그린 <세계 먼지 World Dust>(68)는 완전추상으로서 그의 거대한 세계와 미세한 세계의 상호관계를 시사했던 가장 적절한 예의 그림이라 하겠다.
그는 “나의 영감의 근저에는 고향 중서부의 것들로부터 미세한 세계의 내용들까지 포함된다.
나는 돌과 나무껍질에 새겨진 우주의 많은 것들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세하게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클레의 그림들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클레는 미국 예술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선불교 미학을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도 있었다.
“우리는 점차 일본인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몇몇 근래의 미국 예술가들이 선불교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선불교가 그들의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다.
화랑과 언론에서 그 점을 거론한 적도 있었다.”
선불교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예술가들 가운데 애드 라인하트가 있다.
토비가 1948년에 그린 <통로 Transit>(69)는 라인하트가 40년대 후반에 그린 그림과 관련이 있다.

1957년 3월과 4월에 토비는 50장에서 90장 가량의 드로잉을 검은 수미(Sumi) 잉크를 사용하여 흰 종이에 그렸다.
그의 드로잉들은 폴록이 50년대 초에 검정색과 흰색으로 그린 그림들과 아주 유사했고, 마더웰이 1965년에 연속적으로 그린 <서정적 조곡 Lyric Suite>(39)과도 흡사했다.
토비는 <하얀 글씨>가 “한 번에 성취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예술가들이 커다란 크기로 그림을 그리자 토비의 뉴욕 후원자 매리온 윌라드와 파리의 후원자 미셸 타피에는 그에게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라고 충고했다.
토비도 그래서 대형 그림을 그렸지만 여전히 작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처럼 작은 붓놀림으로 커다란 공간을 채웠을 뿐이었다.
다른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처럼 그는 개인적으로 영웅적인 인간성을 나타내는 영상들을 추구하지 않았다.
1957년 7월 수미 드로잉들을 그린 며칠 후 “클라인과 폴록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다른 음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부터 그는 스위스의 바젤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면서 그림에만 더욱 전념했다.
이듬해에 그가 소개한 그림들인 <공간에서의 순간 Moment in Space> <공간 의식 Space Ritual>   <오리온의 할큄 The Claws of Orion>은 일흔이 넘은 대가의 완숙한 그림들로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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