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술로도 달랠 수 없는 번뇌

폴록의 세 번째 개인전이 1946년 3월에 열리기로 예정되었다.
폴록은 과슈로 그린 몇 점과 열한 점의 유화를 준비했다.
그것들은 시적이거나 전설적인 요소들이 있는 그림들로서 <곤궁에 처한 여왕 Troubled Queen> <작은 왕 The Little King> <하얀 천사 White Angel> <여 대사제 High Priestess> <달배 Moon Vessel>, 그리고 리가 붙인 제목인 <할례 Circumcision>(67)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노란 삼각형 Yellow Triangle>과 <열쇠 The Key>는 마티스가 즐겨 사용한 무지개색과 자신의 회화적 구성을 혼용하여 그린 그림이었는데 거기에서 폴록은 에너지가 분출되도록 그림의 동력주의를 고조시켰다.
동력주의란 빠른 붓놀림으로 이루어내는 색의 운동을 말한다.

전람회는 1946년 4월 2일부터 20일까지 열렸는데 두 번째 전람회보다 더욱 실망을 주었다.
평론가들은 아예 그의 그림들에 관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두 평론가가 언급했지만 그들 역시 폴록의 그림들을 탐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린버그도 『네이션』에서 폴록의 그림에 실망했으며 어느 그림도 그가 먼저 그렸던 그림들에 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론가들에게 외면당하자 폴록은 술로 마음의 번뇌를 달래려고 했다.
여러분도 경험했겠지만 번뇌하면서 마시는 술은 폭음이 되는 게 보통이고 번뇌는 오히려 늘거나 마찬가지일지언정 줄지는 않게 마련이다.
그는 근처에 살고 있는 카디시와 함께 자주 술을 마셨다.
밤이면 폴록이 만취해 귀가할 때마다 그가 과음하는 것은 카디시가 동행하기 때문이라며 리는 카디시를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폴록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도 카디시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리는 스텔라(폴록의 어머니)를 나무랐고 샌드를 나무랐으며 나를 나무랐다. 그녀는 잭슨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나무랐다”고 카디시가 투덜거렸다.
카디시에 대한 리의 미움이 얼마나 심했던지, 1956년 폴록의 장례식 때 그녀가 카디시를 참석하지 못하게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폴록의 가족들은 카디시가 참석하지 않으면 자기들이 장례식을 보이코트하겠다고 우기기까지 했다고 한다.
리는 사랑하든지 미워하든지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려고 했으며 동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중간 무심의 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7월에 그린버그가 폴록을 방문했다. 그는 4년 전에 폴록을 만난 이래 줄곧 그를 찾고 있었다.
그는 미술세계에서의 자신의 역할이 “마치 여행자와도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린버그는 “회화의 내용은 저습지이다”, “회화는 회화이면서 회화이다”라고 말했으며, 지식이 오로지 경험의 확실한 자료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처럼 현상은 다른 현상들과의 고유한 관계 안에서 연구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세대는 모두 천재들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폴록의 화실에 들어섰을 때 그린버그는 폴록이 막 완성하여 말리려고 벽에 걸어놓은 <파란 무의식 Blue Unconscious>을 보았고, 바닥에 펼쳐놓고서 이제 막 그리기 시작한 <과거의 것들 Something of the Past>도 보았다.
그는 아주 심각한 얼굴로 한동안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을 바라보더니 손가락으로 눈 언저리를 누르면서 그림에 더욱 초점을 맞추었다.
그린버그는 바닥에 놓인 그림을 바라보면서 “저건 아주 흥미있군. 여보게, 저런 그림을 여덟 번이나 열 번쯤 더 그리게”라고 폴록에게 말했다.
폴록은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는데 과거에 그의 충고가 얼마나 효험이 있었던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는 순수추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회화의 형태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며, 폴록이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홀리스틱 화법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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