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새로운 도전자 필립 구스턴
폴록에게 도전한 예술가가 드 쿠닝 한 사람뿐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뉴욕파의 모든 예술가들이 그에게 도전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폴록보다 한 살 어린 필립 구스턴(Philp Guston 1913~80)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캐나다에서 출생하여 미국으로 이주해 아이오와 주에서 4년 동안 교편을 잡다가 1945년에 뉴욕으로 온 화가로서 본명은 필 구스턴이다.
그는 눈이 커다란 아이의 이미지로 그린다든가 유령같이 그려 만화처럼 웃음을 자아내는 해괴망칙한 은유의 그림들을 그리곤 했다.
그가 그린 <만일 이것이 내가 될 수 없다면 If This Be Not I>은 독특한 주제였다.
또 그는 ‘어미 거위 Mother Goose’ 이야기에 나오는, 나이든 여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는 내용을 주제로 선택하면서 그렇게 제목을 부쳤다.
구스턴의 전람회가 1945년 1월에 미드타운(Midtown) 화랑에서 열렸다.
그는 그때 <할로윈 파티 Halloween Party>와 <감상적인 순간 Sentimental Moment> 외에 여러 점을 소개했는데 일반 관람자들뿐 아니라 동료 화가들도 그의 만화 같은 이미지들에 놀라워했다.
언론에서 휘트니 미술관과 평론가 그리고 작가들을 대상으로 현존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누가 대가가 되리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이 주장한 대가들의 명단에는 구스턴의 이름이 먼저 적혀 있었다.
1973년 구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장식하지 않은 벌거벗은 상태의 드로잉을 좋아한다.
드로잉하는 행위는 발견하고 시사하며 지적하는 것이다.
드로잉에는 색과 부피들의 산만함이 없다. …
나는 대개 내가 그릴 그림을 위해서 드로잉한다.
운이 좋은 날은 형태와 공간들이 균형을 잘 이룬 드로잉을 하게 되고, 드로잉 자체가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드로잉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물감과 빛들의 실제를 같은 곳에 가하게 된다.”
구스턴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드로잉했지만 드로잉 자체를 이미지로 남긴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88년 어떤 평론가는 그에게 드로잉은 자신의 회화적 문제들을 푸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스턴은 원래 추상표현주의 화가였고 40년대에 만화 같은 그림들을 그려서 더욱 알려졌지만 그의 깊이있는 미학은 그의 완전추상화들에서 나타났다.
1950년과 54년 사이에 그는 하얀 종이 위에 검정색으로 주로 드로잉했다.
그는 유연한 선을 사용한 형태들을 기본적인 표적들로서 탐구하고자 했다.
1978년 구스턴은 자신의 중국적 서예 드로잉 방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송나라 시대에는 예술가들이 수천, 수만 번의 드로잉을 한 후 대나무 순이나 새들을 그렸는데 그들의 그림에 나타나는 리듬이 여러분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것을 선불교 중들이 ‘사토리(Satori)’라고 불렀고, 나는 그것을 취한 것 같다.
그것은 두 가지 행위들을 함유하고 있다.
네가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며, 그것에 관해서는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지를 지향한다.”
여러분은 구스턴이 동양회화에 관해서 제법 알 만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뭔가 제대로 알지는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 예술가가 이만큼이라도 동양회화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는 점을 가상하게 생각해주어야 할 것이다.
구스턴은 1940년부터 1950년까지 뉴욕에 거주하면서 아돌프 고틀립, 드 쿠닝, 마크 로드코와 잘 어울렸고 폴록과는 벌써부터 우정이 두터웠다.
두 사람은 1927년부터 29년까지 고등학교에서 동문수학했던 동창생들이었기 때문이다.
구스턴이 혜성처럼 뉴욕에 나타나 폴록의 명성에 그늘을 만들면서 가장 훌륭한 예술가로 평론가들에게 부상되자 폴록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물론 시기심이 대부분이었지만 거기에는 그가 완전추상을 추구하지 않는 데 대한 반발도 포함되어 있었다.
허먼 체리는 “구스턴은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예술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구스턴은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만일 이것이 내가 될 수 없다면>이 성공하자 구스턴은 폴록이 누려야 할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1945년 5월 7일 폴록의 형 샌드가 자신의 아파트에 한 무리의 예술가들을 초대했고, 구스턴도 옛 친구들을 만날 겸 그곳에 왔다.
그들이 어지간히 술을 마시고 떠들썩해 있을 때 갑자기 폴록이 벌떡 일어서서 구스턴에게 소리쳤다.
“저주받을 놈, 난 네가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구스턴의 얼굴이 경색되었다.
증인들의 말이 다 같지는 않지만 폴록은 구스턴을 창 밖으로 내던지려 했고, 어찌나 심하게 격투를 벌였는지 서로를 죽일 것만 같았으며 결국 두 사람은 기진하여 싸움을 중단했는데 구스턴은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