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무의식 세계의 신화적 이미지를 표현하다

폴록은 뉴욕으로 온 지 13년 만에 찾아온 행운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신이 위대한 예술가임을 고지하기 위해 그림 그리기에만 전념했다. 폭 6m가 넘는 벽화를 그리기에는 그의 화실이 협소함을 느끼고 자신의 화실과 리의 화실을 가르는 벽을 허물어 공간을 넓히고 싶어했다. 그렇게 되면 그의 화실은 1/3이 더 넓어지지만 리는 그 의견에 동조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럼, 난 어디서 그림을 그리란 말이야?”라고 물었다. 두 사람이 이 문제를 가지고 다투고 있을 때 폴록과 고등학교 때부터 우정을 나누어온 친구 조각가 루벤 카디시가 방문했다. 카디시는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후 자신의 화실 근처 웨스트 12번가에 빈 방이 하나 있으므로 그곳에 리의 화실을 꾸미라는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리는 선뜻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폴록은 망치로 벽을 쳐부수었고, 리와 그는 밤늦도록 부서진 벽 조각들을 양동이에 담아 5층 층계를 여러 번 오르내리며 밖으로 내다버렸다. 이제 그는 넓어진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게 되었고 리는 그가 딴전을 부리지 않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폴록은 화실에 앉아서 직관이 잘 작용하도록 눈을 감은 채 감지하기 어려운 무의식 세계에 있는 이미지들을 조심스럽게 인식 안으로 운반했다가 재빨리 캔버스에 담으려 했다. 그는 무의식 세계의 모호한 이미지들을 탐험하기 위해서 신명이 나도록 직관의 영역을 넓히기도 했다. 무의식 세계에 오래 남아 있으려고 그는 비이성적인 생각들을 일깨웠으며 원시인처럼 회화에 대한 지식과 기교들을 전혀 모른다는 듯이 그저 감성으로 붓을 움직이면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이미지들을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폴록은 고유한 방법으로 이미지들을 창조했다. 그는 먼저 <암이리 She-Wolf >(51)를 완성했다. ‘암이리’는 로마 건국신화에 나오는 동물로서 로마를 건국한 쌍둥이들에게 젖을 먹여 키운, 로마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이리였다. 이 그림은 신화를을 참조한 것 같지는 않고, 두 동물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의 동물은 황소로서 피카소의 황소 그림을 연상케 하며, 오른쪽의 것은 전혀 다른 이미지로서 미국의 5센트짜리 동전에 그려져 있는 들소와도 같다. 두 동물은 두툼한 붉은 화살로 황소의 심장으로부터 들소의 머리까지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화살은 인디언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회화적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암이리>는 유럽의 황소와 미국 들소의 만남이었고, 두 놈은 인디언의 화살 같은 것에 맞아 폴록의 전리품이 되고 말았다.

폴록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를 꺼렸는데 특히 이 그림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미술품 중개상 시드니 재니스는 1943년에 『미국의 추상과 초현실주의 예술 Abstract and Surrealism Art in America』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면서 폴록의 <암이리>를 게재했다. 그는 폴록에게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는데 폴록은 “‘암이리’가 그려지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그렸기 때문이다”라고만 말했고 재니스는 그의 대답이 설명이 아니라서 유감스러워했다.

폴록은 곧이어 <비밀의 수호자들 Guardians of the Secret>(54)과 <파시패 Pasiphae>(53)를 그렸다. 그 그림들은 특히 무의식 세계와 연계된 것이었다. 폴록의 화실을 방문했을 때 스위니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네 개의 토템 같은 모습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발견했다. 그는 그 그림에 매료되어 뚫어지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폴록이 그림을 가리키며 그건 ‘모비 딕(Moby Dick: 장편소설 제목)’이라고 하자 스위니는 ‘파시패’라고 소리지르면서 폴록의 말을 무시한 채 “그건 파시패다”라고 거듭 말했다. 모비 딕은 흰 고래의 이름인데 소설에서는 자연을 상징한다. “빌어먹을 파시패가 누구야?”라고 폴록이 물었다. 스위니는 “파시패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스(Minos)의 아내이며 또 흰 황소와 섹스하여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미노타우어(Minotaur)를 낳은 어머니이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폴록은 다시 “모비 딕이 어때서 그래요?”하고 물었고, 스위니는 “그건 판에 박힌 진부한 제목이다”라고 대답했다. 폴록은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림의 제목을 ‘파시패’로 정했다.

더러 평론가들은 40년대 초의 폴록의 그림을 “신화적 그림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그러한 평은 로드코나 고틀립의 그림들에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파시패’는 다만 토템 이미지를 그린 신비스러운 주제로서 당시 폴록이 영향을 받은 잠재의식에 관한 융의 시각이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하는 쪽이 오히려 적당할 것이다.

여러분은 그가 헨더슨에게 치료를 받을 때 그의 주문대로 많은 드로잉을 그렸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폴록은 이런 종류의 이미지들을 그렸는데 이제 그는 그러한 이미지들을 피카소의 후기 입체주의 화법, 미로의 추상적 이미지 창조법, 그리고 마송의 자동주의 화법들을 혼용하여 그 특유의 이미지들로 변형시키고 있었다. 그로서는 혼신을 다해 그린 그림들이었다. 헨더슨이나 정신과 의사가 그의 그림을 보면 그러한 점을 곧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폴록의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의 솔직한 성격이 무의식 세계에 있는 이미지들을 정직하게 운반한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폴록은 주위 사람들이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에 감사하면서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으로 더욱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그는 꿈 속에서도 자신이 그리고 있는 이미지의 환상을 보았다. 이런 일은 예술가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만한 집념이 없이는 자화자찬할 만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다. 9월에 그는 <상처 입은 동물 Wounded Animal>(52)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표현주의 예술가 프란츠 마르크가 일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불길한 예감으로 그렸던 상처 입은 사슴의 그림을 상기시킨다. 폴록은 이 그림 외에도 몇 점을 완성했지만 제목을 정할 수 없어서 그냥 무제로 남겨두었는데, 나중에 이러한 그림의 제목들을 이웃 사람들에게 짓게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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