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잭슨 폴록의 이력서

1942년 폴록이 그림을 세 점밖에 못 그렸던 것은 그와 리가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그해 12월 정부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WPA 프로그램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는데 이유는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수백만 명이 군수품 제조와 관련한 공장에 직장을 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부는 수천 점의 그림을 경매에 붙였고, 공항이나 우체국에 그려진 벽화들에 정부의 색인 푸른색을 칠해 지워버렸다. 수많은 그림들이 무게로 달아 1파운드(453g)에 4센트라는 헐값에 매매되었다. 그 중에는 폴록의 그림도 몇 점 포함되어 있었다. 폴록과 동료 예술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오히려 3달러 내지 5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정부에 항의했다.

예술가들은 WPA에서 실직했고, 폴록은 브루클린에서 8일 동안 철판을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임금을 40달러 깎이는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다. 리, 부사, 바지오츠는 정부가 알선해준 뉴욕 상업학교에 취직되어 주급 7달러를 받고 기계를 드로잉했는데 리도 곧 해직되고 말았다. 두 사람이 모두 실직하자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폴록의 그림이 팔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방가르드 화가들이 그림을 팔아 생활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으므로 그들은 따로 직업을 가져야만 했다. 예를 들면 허버트 퍼버와 세이모어 립턴은 치과의사였고 드 쿠닝과 존 리틀은 디자이너였다. 아내가 돈을 벌어왔던 행운의 예술가들로는 아돌프 고틀립과 바넷 뉴먼이 있다. 마더웰과 불트먼은 가족들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귀족과도 같은 예술가들이었다.

미술품 중개상들은 잘 알려진 유럽 예술가들의 그림들을 선호했으므로 뉴욕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이 그림을 팔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폴록은 재료를 살 돈이 없었으므로 재료상 라우 로젠탈(Lou Rosenthal)에게 가서 25달러에 해당하는 재료를 주면 그림 한 점을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로젠탈은 이를 거절하면서 자신의 아파트는 무명작가들의 그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폴록은 조셉 메이어(Joseph Mayer)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폴록은 할 수 없이 재료들을 훔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메이어가 상점 안에서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 폴록을 눈여겨보니 그가 코트 주머니에 물감 튜브들을 계속 넣고 있었다. 그가 폴록의 곁으로 가서 “도와드릴까요?”라고 했더니 폴록은 “아뇨, 내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물감을 계속 집어넣었다. 그것은 아주 서툰 도둑질이었는데 메이어는 친절하게도 폴록이 그 상점을 나갈 때까지 제어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예술가를 도왔다.

페기의 화랑 ‘금세기 예술 Art of this Century ’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고용한다는 말을 듣고 폴록은 취직을 신청했는데 화랑에서는 그에게 이력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력서를 써본 적이 없었던 그가 제출한 이력서를 보고 화랑측에서는 그가 자서전을 썼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는 취직이 되어 엘리베이터를 운전하고, 관람객의 수를 셌으며, 지하실에서 액자들을 만들기도 했다. 화가이며 음악가인 를랜드 벨(Leland Bell)이 그와 함께 일했다. 폴록이 벨에게 장 아르프의 그림을 가리키며 “나도 아르프와 같은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다”고 말하자 벨은 수긍했지만 그가 파울 클레의 그림을 가리키며 똑같은 말을 했을 때에는 허튼 소리를 한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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