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내가 자연이다”
폴록의 우수한 그림들은 1942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래엄의 미학이론, 피카소의 입체주의 화법, 융과 그의 제자 헨더슨의 정신분석학, 마타의 자동주의 회화기교, 미로의 환상적인 이미지들, 마티스의 무지개색, 그리고 시쿠에이로스의 즉흥적 이미지 만들기 등이 그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이었다.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폴록은 세 점의 그림을 완성했다. <속기술적 모습 Stenographic Figure>(44) <달 여인 The Moon Woman>(43) <남성과 여성 Male and Female>(45)이라는 제목의 이 그림들은 여태까지 그렸던 그림들과는 전혀 다른 좀더 복잡하고 고유한 것이었다. 이런 성숙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는 뉴욕으로 온 후 12년을 좌절하면서도 인내한 것이었다.
그가 초기에 그린 <자화상>(11)은 크기가 고작 13×18㎝였던 데 비해 <남성과 여성>은 높이가 175㎝나 되었고, <달 여인>은 그보다 약간 작은 크기였으며 <속기술적 모습>은 가로가 142㎝에 이르렀다. <속기술적 모습>은 반추상 이미지로서 비스듬히 기댄 누드화였다. 몇몇 평론가들은 그 그림이 실제로는 남자와 여자 두 모습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견해에도 타당성은 있었다. 폴록의 그림은 비스듬히 기댄 누드를 주제로 했으므로 그림에 나타난 파란 삼각형은 여지없이 여인의 머리를 상징했던 것이며, 아래 두 개의 유기적인 붉은 원형들은 여인의 젖가슴이 분명했다. 연속적인 유연하고 검은 선들은 아마 그가 두 다리 또는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들을 상징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그 그림은 폴록이 과거의 회화방법과 단절했다는 보증물로서 충분한 것으로서 피카소와 미로에게 영향받은 입체주의적 화법과 생리적 형태들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것이었다.
<남성과 여성>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한 점인 중요한 그림으로서 칸딘스키의 <줄무늬 Striped>와 유사한 점이 있다. 칸딘스키의 <줄무늬>는 1942년 초에 이미 맨해턴의 ‘니렌도르프 Nierendorf ’ 화랑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다.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수직으로 세운 다섯 패널들 또는 줄무늬들은 동그라미, 반달, 달팽이 같은 형태, 그리고 다른 기하학적 형태들에 상반되게 구성된 것으로서 그 중 두 형태는 모호하나마 인간의 모습처럼 보였다. 이 두 형태가 폴록의 <남성과 여성>에 나타난 두 개의 머리 형태와 관련이 있어 보였으며,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폴록도 다섯 수직선을 사용했다. 이 그림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성적 충동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검정, 하양, 노랑, 빨강색들이 푸른색 배경에 흩뿌려져 있는데 이는 5년 후 그가 물감을 뿌려서 그릴 그림들을 벌써 시사하는 듯하다.
그의 그림들은 나중에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을 들었다. 원래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모마의 관장 알프레드 바가 칸딘스키의 초기 추상화들에 붙였던 표현이었으며, 그 말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40년대 중반부터였다. 바는 모마가 개관될 때 스물일곱의 나이로 관장에 추천된 하버드 출신의 능력있는 미술사학자로서 현대미술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모마가 미술의 요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폴록은 ‘추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정신세계에서는 추상 이미지가 실제 이미지와 다름없었으며 그것들이 모두 분출되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산더 칼더가 폴록의 화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칼더는 10년 전에 이미 움직이는 조각들을 제작하여 파리에서 인정받았던 조각가였는데, 그는 자신의 조각을 ‘움직이는 몬드리안’이라고 불렀다. 칼더는 몬드리안의 화실을 방문하여 자연의 모든 선들을 그가 수직과 수평의 쇠창살로 제한하면서 색들을 순수한 색들로 단순화시킨 데에 감명을 받았으며 그러한 조형주의가 객관주의의 극치임을 깨닫고 “나는 움직이는 몬드리안을 만들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쇠조각들에 순수한 색들을 칠한 후 아주 정교하게 철사줄로 균형을 이루게 하여 공중에 매달았다. 여러분이 뉴욕의 케네디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친구와 친지들의 영접만 반가워할 게 아니라 천정을 한 번 쳐다보기 바란다. 거기에 칼더의 ‘움직이는 몬드리안’이 있다.칼더는 폴록의 화실로 와서 그림들을 둘러본 후 그의 그림들에는 자신의 조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우아함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것들은 아주 조밀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런데 폴록이 “아, 조밀하지 않은 것들을 보고 싶소?”라고 말하더니 밖으로 나가서는 더욱 조밀하게 그린 그림들을 들고 들어오자 칼더는 기분이 몹시 상했다.
호프만은 그때 폴록의 아파트 옆 건물에 살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리의 권유로 그는 폴록의 화실로 와서 그림들을 둘러본 후 폴록이 사용했던 기교에 관해 묻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이번에는 폴록이 아주 불쾌해 했다. “자넨 재능이 있어. 내 강의실에 와서 꼭 배우기 바라네.” 그러면서 호프만이 폴록에게 “자네는 자연으로부터 그림을 그리는가?”고 묻자 폴록은 볼멘 소리로 그의 유명한 말 “내가 자연이오!”라고 대답했다.
벤턴은 “잭슨은 분석적인 면에서는 균형을 찾지 못했지만 근원적인 리듬을 발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폴록이 자연에 내재한 동력주의를 느낄 수 있는 직관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잠재의식과 의식의 분별이 결여된 정신분열 증세를 가졌거나, 그도 아니라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