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브라크는 말했다

피카소와 마티스 모두 세잔을 존경했지만 브라크의 존경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브라크는 말했다.
“마네가 가진 것이라고는 꽃밖에 없다.
세잔은 꽃과 뿌리 모두를 가졌다.
내게는 뿌리로부터 꽃이 된 경로가 중요하며, 그것에 모든 인생이 결집되어 있다고 본다.”


브라크는 세잔이 말년에 “원통, 원추, 그리고 원으로” 사물을 분석하라고 한 충고를 소중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브라크는 친구 리처드슨에게 말했다.

“나는 대단한 것을 발견했네.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아.
내게 사물들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그것들의 조화스러운 관계만 존재할 뿐일세.
나와 사물들의 조화스러운 관계가 또한 존재하네.
이런 조화에 도달하게 되면 어떤 지성적인 진공상태에 도달한 느낌이지.
그래서 모든 것이 가능해지며 … 이는 진정한 시라고 말할 수 있네.”

“두 몸을 한데 묶고 정상을 오르는 등반가들” 피카소와 브라크는 자신들이 20세기 미술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사물들을 분석했고, 이는 분석적 입체주의로 나타났다.
브라크는 말했다.
“우리는 몽마르트에 살고 있었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 만났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내가 피카소와 나눈 대화내용은 누구와도 나누지 못했던 것들이며, 누구도 그 같은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대화를 할 줄조차 몰랐다.”

1909년 초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원시주의 미술에 대한 피카소의 관심으로 그의 입체주의 그림이 브라크가 구사한 세잔의 후기 화법에 의한 그림과 비교되더니 이후부터는 두 사람의 상이한 점이 점차 줄어들었다.

피카소는 1910년에 암브로이즈 보아르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보아르의 단단하고 부처처럼 생긴 모습을 은빛 색으로 어렴풋이 묘사했다.
그는 보아르의 얼굴을 조각의 면들처럼 각이 지도록 분열시킨 뒤 각 면이 서로 겹치는 각진 부분에 투명한 색을 칠했고, 조각적 비례로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했으며, 공간의 깊이가 엷게 나타나도록 했다.
부서진 면들이 운집되고, 색들이 미묘하게 달라졌으며, 어렴풋이 보이는 보아르의 얼굴은 15년 전 세잔이 그린 바로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세잔이 그린 보아르와 피카소의 초상화를 비교하면 불과 15년 동안 회화에 얼마나 큰 진전이 있었는지를 보게 된다.
<보아르의 초상>(1910)이 전시되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전시회에 온 어린 소년이 “야! 저건 보아르다!”라고 소리쳤다.
완전히 부서뜨린 보아르의 얼굴에서 그의 모습을 유추할 만큼 최소한의 요소만 남길 수 있는 분석적 입체주의의 장점을 피카소가 유감없이 시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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