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자동주의 회화의 사도 로베르토 마타

1942년부터 뉴욕에서는 유럽 예술가들의 활약도 현저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마타가 먼저 뉴욕으로 와서 초현실주의 회화에 젊은 예술가들이 동조하도록 종용했다. 고키와 윌리엄 바지오츠 두 사람은 벌써 초현실주의 회화를 추구하고 있었고, 우연히 마타를 만난 부잣집 아들 로버트 마더웰이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동주의 회화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폴록도 나중에 마타의 그룹에 동조했다. 칠레인인 마타의 본명은 로베르토 세바스찬 마타 에차우렌(Roberto Sebastian Matta Echaurreen 1911~  )이었는데 사람들은 부르기 편하게 마타라고만 불렀다.

마타는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파리에 안주했고,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건축을 수학한 후 1937년에 초현실주의 운동에 가세했다. 앙드레 브르통은 마타의 그림 한 점을 사주면서 “당신은 초현실주의 예술가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때 초현실주의에 대해서 문외한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찾으려고 했던 것은 “작은 거북이가 사막 한가운데서 알로부터 깨어나와 바다를 향해 조금씩 기어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타는 곧 브르통과 탕기의 친구가 되었다. 마타는 그들보다 2년 먼저인 1939년에 뉴욕으로 왔는데 젊고 영어를 잘 구사했으므로 미국 예술가들과 곧 교통할 수 있었다. 그해에 그린 <구성 Composition>은 자신이 자동주의 회화의 사도임을 사람들에게 부각시켰다. 그의 그림은 마치 우주의 어떤 미세한 장면을 크게 확대하여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공상과학적 우주를 탐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자동주의적 제스처와 그가 선호한 투명한 색들은 환상적이면서도 생소한 느낌을 주었다.

서른 살의 마타는 앙리 마티스의 아들 피에르 마티스의 화랑에서 전람회를 가진 후 파리의 미술계에서 인정받았지만 뉴욕에서는 홀로 ‘천재 예술가’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가 없는 고을에서는 토끼가 왕 노릇한다”고 했듯이 당시는 아직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앙드레 마송, 브르통 등 초현실주의의 대가들이 도착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착하면서 마타의 영광은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마타는 그 점을 몹시 못마땅해 했다. 브르통이 뉴욕에 도착하면서 우선 마타에 대한 칭찬이 줄기 시작했다. 유럽의 대가들이 속속 도착하자 사람들은 이제 마타에게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그늘에 가려지게 되자 마타는 “시팔놈들, 난 나의 운동을 펴고 말겠다”고 말했다고 휠러는 전한다.

마타는 미국 작가들의 모임을 구성하기 위해서 9번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 여섯 예술가 부부를 자주 초대했다. 그는 그들에게 탕기와 뒤샹이 20년대에 이미 발전시켰던 게임을 소개했는데 그 게임이란 서로가 무엇을 쓰는지 모르게 한 줄씩 글을 쓴 후 그것들을 묶어서 한 편의 시로 낭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폴록은 이런 게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가 그 게임을 어른들의 철없는 장난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폴록을 마타는 “굳게 닫혀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마타는 작가들의 아내는 참석시키지 않았는데 리는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아내를 프랑스 애완용 강아지 정도로밖에는 취급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폴록은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타의 높은 평판과 그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보여주는 관심 때문에 겨우 참여하는 정도였다. 주로 바지오츠, 캄로우스키, 부사, 마더웰이 폴록과 함께 마타의 집에 모였고, 그들은 자동주의 드로잉을 실습했다. 예를 들면 불, 물, 땅, 공기를 주제로 무심한 상태에서 드로잉하는 것이었다. 마타는 “너희들이 장님이라고 가정하고 수영장에 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하여 드로잉하라고 말했다. ‘하루의 시간들’은 마타가 선호한 주제였다.

시간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주제였다. 키리코는 시간의 부재를 그림으로 그린 적이 있었으며, 오후 두 시의 장면을 그리면서 그림의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게 했고, 달리는 녹아흐르는 시계를 그리면서 곤충기 시대를 재현했다(35). 또 자코메티는 <새벽 네 시의 궁전 The Palace at 4 A.M.>을 제작하면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은 그가 사랑에 빠졌던 여인과 새벽 네 시에 사랑의 행위를 했던 것과 관련한 조각이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시간개념은 보통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는 꿈 같은 시간이었다. 마타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무의식의 상관성을 정립하려고 했다. “초현실주의는 대부분 밤(꿈)의 세계이다”라고 캄로우스키는 소감을 말했다. 그러나 폴록은 어떤 메시지를 주는 그림을 그리기를 바라지 않았고 그저 그림을 그리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는 브르통의 아이디어처럼 그림을 형이상학에 사탕발림하는 그러한 행위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마타는 그들에게 꽃에 대한 정의를 말하라고 물었다. 폴록은 “꽃은 굴 속에 있는 여우다”라고 정의했는데 아무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마타는 나중에 “잭슨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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