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다비트
네덜란드 태생 플랑드르 화가 제라르 다비트Gerard David(1460년경~1523)는 고우다 근교 오우데바테르Oudewater에서 태어났고
하를렘에서 게르트겐으로부터 회화를 수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브루게에 정착한 건 1484년이었다.
한스 멤링이 1494년에 타계하자 그가 브루게의 대표적인 화가로 인정을 받았다.
위대한 화가들의 시대였던 15세기가 종료되자 브루게의 경제적 중요성도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1500~25년경 브루게는 여전히 미술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약간 작품성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많은 회화 작품이 스페인에 수출되었다.
다비트의 구도는 다른 화가들에게 모사의 대상이 되었으며 <아기 그리스도에게 음식을 먹이는 동정녀 The Virgin Feeding the Christ Child with Porridge>의 경우 모사품이 네 점이나 된다.
이런 인기는 그가 그리스도 생애의 각 장면을 가정적이면서 친근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다비트의 초기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1498년에 제작한 두쪽 패널화 <캄비세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Cambyses>이다.
이 작품은 잔혹한 소재를 천진난만하게 묘사한 것으로 화면 가득 배치된 인물들의 모습은 정밀하게 묘사된 배경의 건축물과 더불어 조화를 이룬다.
르네상스풍의 세부 묘사가 두드러진 1507년에 제작한 세쪽 제단화 <그리스도의 세례 The Baptism of Christ>는 세 폭의 패널로 된 전체 구도를 통일감 있게 처리해 다비트의 역랑을 시위한다.
이 작품은 나무와 바위가 흩어진 풍경을 중경에 배치하고 세례장면에 입회한 기증자들과 그들의 수호성인을 전경에 배치함으로써 완벽한 조화를 꾀했다.
그는 동시대 화가인 안트베르펜의 퀸텐 메치즈와 마찬가지로 반 에이크 그리고 반 데르 베이덴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구했다.
그렇지만 다비트는 메치즈에 비하면 독창적이지 못했으며,
구도에서도 그에 비해 자유롭지 못했고,
인물들은 거칠고 경직되었으며,
색채는 말년으로 갈수록 온화함을 잃어 갔다.
그러나 풍경 묘사에는 뛰어나 구도는 전통 형식을 따랐더라도 빛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창작을 부여했다.
그의 양식은 추종자 아드리앤 이센브란트Adriaen Ysenbrandt와 벤손에 의해 16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