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입체주의 영향
마르셀은 1911년 새해를 루엥에 있는 아버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았다.
입체주의의 영향이 다분히 나타난 <소나타>는 그때 그린 것으로, 여동생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가족이 모이면 형들은 으레 체스를 두었고, 동생들은 음악을 연주했다.
<체스 게임>과 마찬가지로 그는 각 인물들을 상호 무관하게 존재하는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본느는 피아노를 치고, 막들렌느는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수잔느는 동생들 앞에 앉아 있고, 귀가 먼 어머니는 연주를 들을 수는 없지만 딸들 중앙에 장승처럼 우뚝 서 있다.
반 세기가 지난 1964년 마르셀은 이 그림에 관해 “각진 형태 안에 나타난 창백하고 부드러운 색조들은 일시적인 분위기를 나타낸 것이었으며, 나의 회화의 진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입체주의 효과에 경이를 느낀 것은 자크의 그림을 보고난 이후였다.
형이 입체주의 방법으로 투명한 색을 사용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낸 것을 보고 우아하게 나타나는 효과에 감동했으며, 좌우대칭의 구성에 호감이 생겼다.
마르셀은 술회했다.
“입체주의 이론은 지성적인 점에서 나를 매료시켰다.
… 나는 입체주의 이론을 단지 설명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나의 독특한 회화를 찾거나 창조하려고 시도했다.”
입체주의는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 예술가와 파리에 있는 외국인 예술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서양미술은 입체주의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입체주의의 창시자 브라크와 피카소는 1908년과 1914년 사이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 함께 작업했는데 브라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두 몸을 한데 묶고 정상에 오르는 등반가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두 사람이 계속해서 등반하지는 못했다.
1914년 전쟁이 일어나자 징집통지서를 받고 아비뇽 기차역으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브라크를 피카소는 창문을 통해 바라볼 뿐이었다.
피카소는 스페인 국적을 가졌으므로 징집에서 제외되었고, 마티스는 징집 적령기를 넘긴 나이였으므로 파리에 남을 수 있었다.
징집되기 전까지만 해도 브라크와 피카소가 어찌나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던지 그림에 제작연대를 적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이 시기에는 그것을 적는 것조차 게을리 했으므로 누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같은 라틴족이지만 프랑스인과 스페인인의 기질은 달랐고, 이런 이유로 해서 두 사람의 그림은 상이하게 나타났다.
브라크의 그림은 좀 더 조직적인 구성으로 명상적인 분위기로 나타난 데 비해, 피카소의 그림은 조형적이지만 상상에 의한 표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관람자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으며 영웅적으로 화려하게 보였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브라크의 고전적인 정숙한 그림에 비해 피카소의 것은 매우 이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