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술집에서 예술을 키워가다

언젠가 벤턴은 폴록에게 “너는 예술가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고 충고한 적이 있었다. 이제 폴록도 홀로 작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을 알게 되었다. 1939년 그래엄을 시작으로 그는 예술가들과 교통하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 미술이 프랑스 미술에 비해 뒤졌던 것 가운데 하나가 작가들이 교통할 수 있는 술집이 부족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파리에는 술집이 많았고 보통 새벽 세 시까지 영업했으며, 예술가들이 단골로 가는 술집들이 있었으므로 어느 술집에 가면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막스 에른스트는 뉴욕에 도착한 지 한 달 후에 “이 곳에 와서 보니 파리의 화가들이 많이 있었다. 첫째 초현실주의 예술가들 그룹이 가장 힘있어 보였다. 나는 그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기 어려웠는데 카페들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먼저 전화를 걸어 약속시간을 정한 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만나기도 전에 사라지곤 했다”고 말했다. 이브 탕기도 에른스트의 말에 동감하면서 “카페가 없는 생활은 무료하다. 유럽에서의 카페 생활은 대단히 재미있으며, 특히 파리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해서 여가를 즐기며 친구들을 비공식으로 만나기 십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에른스트는 “뉴욕에는 예술가들은 있지만 예술이 없다. 예술은 한 예술가에 의해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파리의 카페에서는 술도 팔았고 더러는 식사를 할 수도 있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술집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파리에서의 카페 생활을 뉴욕에서 즐길 수는 없었지만 1943년부터 그리니치 빌리지에도 술집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더 클럽(The Club)이라는 그룹이 형성되어 화가, 시인, 평론가가 함께 술을 마시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특히 술집 시다(Cedar)에는 고키, 데이비드 헤어,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로버트 마더웰, 래리 리버스와 평론가 로젠버그, 그린버그 등의 출입이 잦았다. 클라인이 술을 많이 마셨고 폴록은 누구보다도 과음했는데 두 사람이 취하면 논쟁은 곧잘 욕설로 변했다. ‘시팔놈’이라는 말은 폴록의 말끝마다 붙어다니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돈 많은 거만한 부르주아들, 돼먹지 않은 평론가와 화랑 주인들, 아직도 사실주의 회화를 추구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화가들, 그리고 자신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고 간섭하는 사람들을 으례 그런 부류에 집어넣었다.

이제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이 만나기 시작했으므로 좀더 빠른 속도로 각자의 고유한 회화방법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침체한 미술사에 새 통로를 열 수 있는 자질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만나서 술을 마시고 카드 놀이를 했으며 파티를 열고 싸우기도 했지만, 미처 인식하지는 않았더라도 각자의 작품에는 서로가 주고받은 영향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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