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세잔을 완성한 조르주 브라크


브라크는 마티스를 중심으로 모이는 야수주의 예술가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상업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야수주의 영향을 받아 무지개 색을 실험해보았지만, 시각적으로 너무 현란하여 밝은 색을 사용한 그림이 관람자의 눈을 피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의 기질에 어울리지 않는 야수주의 방법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세잔이 말년에 그린 <비베무에서 바라본 생 빅토르>, <레 로베에서 바라본 생 빅토르> 등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세잔이 성취하려고 노력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탐구했다.
그는 세잔이 발견한 것이 입체주의였다는 사실을 알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실험하다가, 세잔이 생을 마감한 곳에서부터 그의 의도를 확대·해석하여 1908년에 <에스타크의 집들>을 그렸다.
세잔은 에스타크의 장면을 여러 점 그렸는데, 브라크는 에스타크 언덕에 있는 집들을 그리면서 세잔과는 달리 집들로만 캔버스를 가득 채움으로써 세잔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입방체 형태의 구성주의 그림을 완성했다.
브라크는 이 그림을 포함하여 여섯 점을 그해 가을전을 통해 발표하려고 했는데 심사위원들이 처음에는 여섯 점 모두 배척하다가 나중에는 가까스로 두 점만 받아들이겠다고 하자 화가 나서 여섯 점 모두 들고 그곳을 나왔다.
이때 브라크는 26살이었다.

브라크의 그림이 배척당했다는 말을 들은 복셀이 마티스에게 가서 브라크가 가져온 그림이 어떤 것이었느냐고 묻자 마티스는 “그가 가져온 것은 작은 큐브 덩어리였다”고 하면서 복셀이 자신의 말을 못 알아 들었을까봐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는 순식간에 큐브 두 개를 그렸는데 브라크가 그린 <에스타크의 집들>의 부분이었다.

미술품 딜러 다니엘 앙리 칸바일러가 당시 브라크를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의 그림이 가을전에서 배척당하자 그에 대한 자신의 투자도 보호할 겸 1년 반 전에 개업한 자신의 화랑에서 11월에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브라크의 그림을 관람한 복셀은 “브라크는 앞으로 전진하는 웅대한 젊은이다. … 그는 형태를 경멸하며 모든 것들, 풍경과 사람의 모습, 그리고 집들을 연역해서 기하모양으로 큐브처럼 만들었다”고 적었다.
복셀이 큐브cube란 말을 사용했으므로 입체주의cubism란 말이 생겼는데, 야수주의란 말을 만든 장본인인 그는 새로운 그림을 분류할 줄 아는 평론가였다.

브라크의 <에스타크의 집들>은 입체주의라고 단정해서 말할 만한 그림이었다.
그는 언덕의 집들을 주제로 수평선을 제거했으며, 집과 나무의 형태들을 단순화시켜서 기본적인 형태들로 제한했다.
입체주의에 대한 브라크의 이해는 “새로운 공간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보이는 공간”이었으며, “사물들을 서로 떼어놓는 것”이었다.
세잔과 브라크의 그림을 비교하면, 세잔은 인상주의 예술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빛이 사물에 반사하는 색들을 사용한 것인 데 비해, 브라크는 마티스의 야수주의 그림에 반발하여 단색주의에 더러 회색을 사용하였다.
브라크는 세잔이 삼차원의 사물을 이차원에 재현하면서 삼차원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독특한 회화방법을 시도했음을 알아챘으며, 세잔의 의도가 좀 더 과격한 방법으로 웅대하게 나타나도록 했는데 전통주의 회화의 관점에서 보면 정도를 매우 벗어난 행위였다.
그때부터 그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볼 수 없게 사물들을 큐브 모양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서 거의 추상으로 변해 갔다.
피카소와 함께 작업하면서 그는 더욱 분석적인 방법으로 입체주의를 진전시켰지만 피카소와 함께 작업하지 않았더라도 혼자 능히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이 같은 분석적 시도는 마르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고, 무미건조한 분석적 입체주의에 그 특유의 재담을 보태는 방법을 생각하게 했다.
입체주의로 해서 20세기 회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으며, 마르셀은 새로운 시기에 걸맞는 새로운 미술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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