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폴록은 드로잉할 줄 모른다”

30년대 초의 미국 예술가들에게는 멕시코 벽화예술가들의 영향이 대단했다. 폴록은 4년 전에 형 샌드를 통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대비드 알파로 시쿠에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6~1974)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1936년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른여덟 살의 시쿠에이로스는 혁명을 추구했던 과격한 성격의 예술가로서 미국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벽화를 홍보하고 있었다.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호세 클레멘테 오로츠코(1883~1949)와 함께 멕시코를 대표하는 세 예술가들 중 막내였던 그는 1896년 12월에 치와와(Chihuahua)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에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이듬해 한 해 동안은 가택연금되기도 했다. 뉴욕에 체재하는 동안에 그는 ‘화가들을 위한 실험적 워크샵(Experimental Workshop for Painters)’을 조직했는데 폴록은 그 그룹에 동참했다. 당시 시쿠에이로스는 무료로 자신을 도와줄 조수가 필요했는데 폴록은 형의 권유로 자원해서 몇 달 동안 거의 매일 오후에 그에게로 가서 도왔다. 그는 멕시코 화가를 위해 물감을 섞거나 나무를 톱질하거나 풀로 붙이거나 석고를 개서 바르는 등 허드렛일을 주로 했다. 이때 폴록은 함께 일하는 동료로부터 “드로잉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들었는데 폴록은 여러 친구들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었으며 그럴 때마다 좌절하며 술을 마셨다.

폴록은 시쿠에이로스가 사용하는 회화기교에 감동했으며, 집으로 돌아와 그의 기교를 자신의 그림에 직접 사용해보기도 했다. <숫송아지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Steer>에서 그는 숫송아지를 석판화로 검정색과 흰색으로 그린 후 에어브러시로 붉은색, 오랜지색, 그리고 파란색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이미지를 장식하였다. 그는 다른 풍경화에서도 좀더 자유롭게 색을 칠하는 회화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멕시코 예술가에게서 받은 영향이었다.

시쿠에이로스는 과음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과격한 성격은 폴록과 상통하는 점이 많았다. 그는 화염을 뿜어내듯 말했는데 “그가 땅콩에 관해 이야기하든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의 모든 말들은 폭발하였다”고 폴록의 친구 루벤 카디시는 회상했다. 시쿠에이로스는 예술가들에게 ‘불의 사나이’로 인식되었다. 그림을 얼마나 크게 그렸던지 그릴 그림을  미리 구성하지 않았으며 물감을 깡통에 담아 그대로 캔버스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연한 이미지들을 창조’하였고 폴록은 그러한 기교에 그저 감동할 뿐이었다.

같은 해 폴록은 캔버스를 마루바닥에 놓고 그와 같은 화법으로 물감들을 뚝뚝 떨어뜨리는 기교를 실험했다. 당시로서는 실험적인 단계에 불과했던 폴록의 물감 흘리기 기법은 나중에 평론가들이 언제, 그리고 누가 먼저 사용했느냐는 문제로 다투어 글을 발표하게 했다. 폴록이 정확하게 누구에게서 이러한 방법을 발견했는지는 그 자신만이 잘 알겠지만 부분적으로는 시쿠에이로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