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 야수주의의 영향


일요일마다 마르셀은 퓌토로 가서 자크를 만났다.
맑게 개인 날이면 퓌토의 예술가들은 파티를 열었다. 방문하는 예술가들이 합세할 때는 파티의 규모가 커졌는데 마르셀이 그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았다.
그는 또 형과 체스두기를 좋아했다.
마르셀이 열한 살 때 자크가 그에게 체스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뒤샹 가족 모두 체스를 좋아했으므로 가족이 한데 모일 때면 으레 체스 게임이 벌어졌다.

형들과 마찬가지로 마르셀도 아버지로부터 매달 생활보조비로 150프랑을 받았다.
외젠느는 은퇴했지만 세 아들을 위해 그만한 돈을 쓸 만큼 경제적으로 넉넉했으며, 바닷가에 별장도 가지고 있었다.
마르셀은 1907년부터 4년 연속 8월이 되면 디페와 르 아브르 사이 노르만디 바닷가에 위치한 아버지의 별장에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가 1907년 여름에 그린 그림들을 보면, 야수주의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사다리에 걸터앉은 두 누드>와 아버지를 모델로 한 <창가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인상주의와 야수주의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림이다.
1910년의 <검정 스타킹을 신은 누드>에서는 인상주의의 영향이 사라지고 야수주의의 영향만이 현저함을 볼 수 있다.

1905년 제3회 가을전에서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를 비롯하여 마티스를 중심으로 모이는 예술가들의 그림을 관람한 마르셀은 “1905년의 가을전에서 본 마티스의 그림은 내게 대단한 감동을 주었다”고 했다.
그해 10월 18일에서 11월 25일까지 열린 가을전은 르누아르, 마네, 앵그르 등 지난 30년간 프랑스 예술가들이 제작한 1,636점의 작품이 소개된 대규모 전시회였다.
따로 마련된 방에는 마티스가 밝은 색을 사용하여 그린 <모자를 쓴 여인>과 <선원들>, 드랭의 경쾌한 그림 <콜리우르의 항구>, 블라맹크의 아름다운 신기루 같은 <말리의 세느 계곡>이 다른 그림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그곳에는 망갱의 <시에스타>와 발타가 보라색을 주로 사용하여 그린 <선원들>도 있었는데, 이들 젊은 예술가들은 나이 많은 마티스를 ‘박사님’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드랭과 블라맹크는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마티스를 중심으로 야수주의 운동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빛나는 스펙트럼 색을 사용하여 매우 밝고 경쾌한 그림들을 그렸는데, 브라운색이 주류를 이루는 어두운 뮤지엄의 그림들에 비하면 눈이 부실 정도로 현란했다.

평론가 카미유 모클레르는 살롱 도톤느(가을전)를 관람한 후 무지개색의 물결침에 경악하면서 “예술가들이 한 동이의 물감을 대중의 얼굴을 향해 퍼부은 것 같았다”라는 소감을 『르 피가로』에 적었다.
루이 복셀도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도나텔로 양식의 작은 르네상스 조각 한 점을 발견하고 “도나텔로가 야수들 틈에 끼어 있군!”이라고 말했다.
복셀이 그렇게 말했으므로 야수주의Fauvism란 말이 20세기의 첫 주의ism로 미술사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마티스는 “야수들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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