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폴록, 알코올 중독이 되다
폴록은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재료들과의 싸움을 캔버스에 남겼다. 그는 물감, 목탄, 연필, 잉크를 사용하면서 이미지들을 창조하려고 했지만 그의 그림들은 벤턴의 눈에 하찮게 보였다. 벤턴은 폴록을 “저주받은 대단한 다색주의자(colorist)”라고 불렀다. 폴록은 이제 막 그린 그림들을 감히 1932년 4월에 있었던 제2회 워싱턴 스퀘어 아웃도어 쇼(Washington Square Out Door Show)에 출품하고는 길에 앉아 5달러나 1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자신의 그림을 사갈 사람을 종일 기다렸다.
당시의 폴록은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그의 친구 톨레지언에 의하면 193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와 폴록은 술에 취해 있었는데, 촛불행진하던 교인들을 보고는 폴록은 목적도 없이 그 행렬을 쫓아 2번가에 있는 그리스인들의 교회까지 따라갔다. 그는 강단에 올라가더니 촛불, 십자가, 성찬배 등등 기물들을 닥치는 대로 마구 바닥에 내팽개치다가 교인들의 신고로 두 사람은 경찰서로 연행되었으며 보석금을 내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톨레지언의 말로는 폴록이 술에 취한 채 경찰서로 연행되어갔던 것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또 어느 토요일 밤에 폴록은 톨레지언과 함께 허드슨 강가에 있었는데, 폴록은 서양문명에 관해 말하다 갑자기 분노하더니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톨레지언은 그때 물에 뛰어들어 그를 구출하지 않았더라면 폴록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고 주장하였다. 1932년에 폴록과 어울렸던 한 친구는 “잭슨이 자살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상식이었다”고 말했다.
벤턴은 뉴욕에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 대한 독설로 고립을 자초한 후 1935년 10월, 23년 동안의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미조리 주의 캔자스 시티로 돌아가 1975년 타계할 때까지 그곳에서 지방의 장면들을 그리면서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박물관 관장들을 공격하는 등 적을 많이 만들었으나 그의 벽화들은 우수했으므로 위임을 받아 그림을 그리면서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의 한정판 클럽(The Limited Edition Club)에서 상을 받았으며 미국 전역에서 이름을 날렸다.
벤턴 부부가 뉴욕을 떠날 때 누구보다 서운해 했던 사람은 폴록이었다. 리타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절망처럼 여겨졌다. 폴록은 폭음하면서 몇 차례나 자살에 관해 말했다. 1937년 벤턴이 뉴욕에 잠시 다니러와서 8번가에 있는 폴록의 화실을 방문했고, 폴록에게 샌드, 톨레지언과 함께 캔자스 시티로 오라고 초대했으므로 세 사람은 그곳으로 가서 그의 집에 묵었다. 그때 폴록이 에피소드를 남겼는데 비극인지 익살인지, 그도 아니면 희비극에 가까운 사건을 연출하고 말았다.
폴록이 캔자스 시티 미술학교에 재학하는 학생들과 어울리면서 거의 매일 밤 술에 취하는 것을 보고 벤턴은 폴록에게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와 리타는 잭슨이 여기 오기 전에는 그에게 이런 증세가 있었는지 몰랐다”고 그는 나중에 말했다. 리타를 다시 만나자 폴록은 그녀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으며, 그래서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채 그녀에게 가서 그녀를 줄곧 사랑해왔으며 자신은 그녀만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라며 자신과 결혼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리타에게 실망한 폴록은 벤턴에게 가서 “빌어먹을 놈, 내가 너보다 더 유명해지고 말 것이다”라고 했다고 벤턴이 친구에게 전했다.
그날 밤 폴록은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면서 만취한 상태에서 이튿날 아침 겨우 벤턴의 집으로 돌아왔고, 리타는 허겁지겁 옷을 입고 그를 의사에게로 데리고갔다. 폴록은 결국 뉴욕 주의 화이트 플레인즈 시에 있는 주립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때가 1938년 6월 12일 월요일이었다.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판사는 폴록이 일 년 미만 동안 주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판결했고, 그는 병원에서 금주치료를 받았다.
그해 9월 30일, 폴록은 104일 동안의 치료를 마치고 다시는 음주하지 않겠다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후 퇴원하였다. 벤턴은 폴록의 퇴원을 축하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띄웠다. “난 네놈이 재능있는 예술가임을 알고 있지만 술만 마시고 작업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넌 빌어먹을 놈이다.” 리타도 동봉한 편지에서 안부를 물었다. 그러나 폴록은 두 달 후부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은 그가 죽을 때까지 그의 정신세계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였고 때로는 자학의 수단이었으며 우울증에 대한 스스로의 처방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