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 중에서
뒤샹의 스페인 친구 후앙 그리
마르셀은 몽마르트의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스페인에서 온 후앙 그리와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와 함께 카페에 자주 갔으며, 두 사람 모두 당구를 좋아해서 당구를 칠 때가 많았다.
이 시기 마르셀은 삽화에 관심이 많았으므로 그리와 삽화에 관한 공통 관심사를 논했고, 신문에 함께 응모하기도 했다.
마르셀과 동갑인 그리의 본명은 호세 빅토리아노 곤잘레즈였고, 같은 나라 사람 피카소보다 6살 어렸다.
그리는 1906년에 파리로 와서 피카소를 만났는데 피카소는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싸구려 가옥 바토 라보아를 그에게 소개해주었다.
그리는 1887년 마드리드의 부자상인 카스틸리안의 13번째 아들로 태어나 공학기사가 되려는 생각으로 1902년 공학학교에 입학했지만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중퇴했다.
그는 그때 『블랑코』, 『네그로』, 『마드리드 코미코』에 삽화를 기고할 정도로 드로잉에 재능을 나타냈고,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청운의 꿈을 안고 19살 때 파리로 왔다.
그가 살던 바토 라보아를 피카소의 친구인 시인 막스 야곱은 “떠내려 가는 빨래”라고 불렀다.
그리는 피카소를 통해 피카소 일당들을 만났다. 피카소를 중심으로 모이는 그룹에는 시인 앙드레 사몽, 기욤 아폴리네르, 막스 야곱이 있었다.
파리로 온 후 그리는 『라시에테 오 부르』와 『르 샤리바리』에 유머스러운 삽화를 기고했으며, 1910년부터 커다란 수채화를 그리면서 상업미술가보다는 순수예술가로 성공하기를 기대했다.
그리는 주변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주제로 삼으면서 친구의 초상화, 풍경화, 도시의 장면들을 주로 그렸다.
그가 피카소를 존경한 이유는 입체주의 그림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피카소와 함께 여행을 하는 등 꾸준히 우정을 나누면서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12년의 <피카소의 초상>은 입체주의의 창시자들인 조르주 브라크와 피카소의 화법과 상이했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아 입체주의 회화를 추구한 다른 예술가들의 그림과도 비교될 정도로 매우 독특했다.
그는 정물화를 주로 그렸는데 <신문>, <꽃>, <신문이 있는 정물> 등이 포함되었다.
그는 단색을 주로 사용하여 독특한 색의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곧 출현할 브라크와 피카소의 종합입체주의를 앞서 예고했다.
브라크가 1912년에 풀로 종이를 붙이는 새로운 기법의 콜라주를 사용하자 그리도 이 기교를 받아들여 신문이나 잡지를 잘라 캔버스에 풀로 붙여 아름답고 서정적인 느낌을 주는 종합입체주의 그림이 되게 했다.
마르셀도 이 시기 입체주의 방법으로 그렸지만 피카소를 만난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