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첫 유화작품은 <블랭빌의 풍경>
1900년 졸업을 1년 남겨놓고 레이몽도 의대를 중퇴하고 예술가가 되겠다고 아버지에게 선언했는데, 그의 관심은 조각에 있었다.
파리로 온 후 레이몽도 자크와 마찬가지로 여가가 생기면 드로잉에 전념하였으며, 흙으로 빚는 작업을 좋아했다.
그는 작품에 형 자크 비용의 예명을 좇아 레이몽 뒤샹 비용이란 예명을 사용하여 형에게 존경심을 나타냈다.
가족들은 레이몽을 천재로 알고 있었고, 마르셀도 형을 매우 존경했다.
레이몽은 1902년의 국전 조각부문에 입선하자 고무되었다.
그는 로댕의 영향을 주로 받았는데, 20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 조각에서 로댕은 독보적인 위상을 확립하였으며 프랑스 밖에서도 명성이 드높았다.
마르셀이 형들이 졸업한 리세 코네일 학교에 입학한 것은 1897년 9월 열 살 때였다. 그는 특히 수학에 재능을 나타냈다. 1900년 수학경시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고, 2년 후의 경시대회에서는 1등을 차지했다. 수학 외의 성적은 우수하지 않았지만 나쁜 편은 아니었다. 집에 오면 마르셀은 수잔느와 놀면서 여동생을 의자에 앉게 하고 드로잉이나 수채화로 그리곤 했다. 수잔느는 그때 오빠가 그려준 초상화를 평생 간직했다.
마르셀의 첫 유화는 1902년 여름 15살 때 그린 <블랭빌의 풍경>이다.
집 뒤로 펼쳐진 나무들이 우거진 풍경을 인상주의 화법으로 묘사한 이 풍경화는 붓질이 모네의 방법과 매우 유사했다.
그는 모네를 무척 좋아했는데 모네는 1883년에 블랭빌에서 멀지 않은 기베르니로 이주했고, 1900년부터 자신이 일본식으로 만든 정원 한가운데 둥근 다리가 있는 연못의 수련들을 가까이서 바라본 장면으로 연속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마르셀이 모네의 화법을 익힐 무렵 모네는 파리 미술계에 익히 알려져 있어 그의 그림을 프린트한 사본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마르셀은 그해 여름 <블랭빌의 교회>와 <블랭빌의 정원과 예배당>의 유화 두 점을 더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