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형 자크와 레이몽
주민들의 존경을 받은 뒤샹의 아버지 외젠느는 1895년 블랭빌의 시장에 선출되었다.
그해 3월 마리가 이본느를 낳았는데 마르셀보다 여덟 살이나 어렸고, 3년 후 다시 막들렌느를 낳아 마르셀에게는 여동생이 셋이 되었다.
5년의 시장 임기를 마친 외젠느는 1900년 다시 시장에 선출되었다.
뒤샹 가족은 벽돌로 지은 커다란 저택에서 살았다.
그 집은 1825년에 건축된 것으로 블랭빌에서 가장 훌륭했다. 건너편에는 15세기에 건축된 낡은 성당이 있었고, 천여 명의 주민 대부분은 그 성당으로부터 수백 미터 반경 내에서 거주했다.
자크와 레이몽은 루엥에 있는 리세 코네일 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로 진학하여 자크는 법대에, 레이몽은 의대에 입학했다.
자크는 어려서부터 드로잉하기를 좋아해서 오후 8시가 되면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로 가서 회화를 배웠다.
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그는 1895년 크리스마스 때 집에 와서 법대를 중퇴하고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평생 가난한 생활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심과도 같았다.
장차 변호사가 될 소질이 있는 아들이 예술가가 되겠다고 하자 외젠느는 그를 설득하고자 하였으나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자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외젠느가 말리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아들을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덟 살 난 마르셀에게 예술가가 되겠다는 형의 모습은 여간 당당해 보이지 않았다.
자크는 징집되어 1년간 복무했다.
프랑스의 징병제는 독특했는데 징집연령에 이른 청년은 제비뽑기로 자신의 징집 여부를 결정했다.
마치 복권을 뽑듯 번호를 뽑아 운이 나쁜 번호가 나오면 3년 동안 복무해야 했다.
마네와 모네 때만 해도 무려 7년이나 복무해야 했지만 복무기간이 그 후 3년으로 단축되었다.
변호사, 의사 등 면허를 필요로 하는 직업을 위해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는 1년만 복무해도 되는 특혜가 주어졌다.
자크는 운 좋게도 파리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여가가 생기면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자크는 22살 때인 1897년에 신문 『르 리르』와 『르 쿠리에 프랑스』에 드로잉을 팔 정도로 재능을 나타냈다.
드로잉에는 예명인 자크 비용을 서명했다.
자크는 15세기 방랑시인 프랑수와 비용을 좋아해서 그의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했다.
그는 파리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몽마르트에 방을 얻고 지냈다.
몽마르트는 노동자, 매춘부, 식당종업원, 연예인 등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대거 거주하는 동네로, 밤이면 카페와 레스토랑의 불이 켜지고 음악과 술 그리고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활기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아르 누보 형식의 포스터가 성행할 무렵 자크의 포스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포스터는 유명한 예술가들, 줄 세레, 알퐁스 뮤사,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것들과 나란히 소개된 적도 있었다.
그는 대중신문과 잡지에 드로잉과 판화를 꾸준히 기고했지만 그렇게 해서 생기는 수입으로는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아버지가 매달 보내주는 150프랑에 의존했다.
외젠느는 한 달에 한 번 상경해서는 자크와 레이몽에게 각각 150프랑씩의 생활비를 주었고, 자크의 단골식당으로 가서 빚을 갚아 주기도 했는데, 자크는 식당에서 하루 세 끼를 모두 해결했다.
외젠느는 두 아들에게 매달 지급하는 금액을 일일이 기록해두어 유산으로 남겨줄 그들의 몫에서 그만큼 제할 속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