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뒤샹의 어린 시절

천재 예술가 앙리 로베르 마르셀 뒤샹Henri-Robert-Marcel Duchamp은 1887년 7월 28일 한창 무더운 날 오후 2시 프랑스의 작은 마을 블랭빌에서 태어났다.
그가 세상에 오기 여섯 달 전 세 살난 누이 마들렌느는 위막성 후두염으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외젠느란 이름을 사용했지만 본명은 저스틴 이시도르Justin-Isidore였고, 어머니는 마리 카롤린느 루시에 니콜Marie-Caroline-Lucie Nicolle이었다.
마르셀의 성 앞 글자 뒤Du는 ‘관련이 있다’는 뜻이고 샹Champ은 ‘들’이란 뜻으로, 들과 관련 있는 뒤샹이란 성으로 미루어 조상은 농부였을 것이다.

외젠느가 태어난 해는 자유의 혁명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프랑스 전역을 넘실거리기 시작한 1848년이었다.
그가 징집된 지 2년이 되던 해 보불전쟁이 발발했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선전포고를 감행했지만 예상과 달리 프랑스는 프러시아에 패했으며, 1870년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복무했던 외젠느는 포로가 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1874년에 제대한 외젠느는 노르만디 루엥의 작은 동네 담빌의 세관에서 근무했고, 그 동네의 부잣집 딸 마리를 아내로 맞아 이듬해 장남 가스통을 낳았는데 미래의 화가 자크 비용이었다.
1876년에 낳은 차남 레이몽 역시 장차 유명한 조각가가 될 레이몽 뒤샹 비용이었다.

외젠느는 1884년 가족과 함께 루엥에서 북동쪽으로 19Km 떨어진 크레봉 강가의 평화로운 마을 블랭빌로 이주했다.
이주하기 몇 달 전 마리가 첫딸 마들렌느를 낳았는데 마들렌느는 세 살 때 사망했다.
외젠느가 블랭빌에 새 보금자리를 장만할 무렵 마침 그 동네 공증인이 사망하여 그는 공증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공증인이란 프랑스에만 있는 독특한 직업으로 변호사처럼 관공소에 제출하는 신청서, 계약서, 유서 등 법적 서류들을 작성해주고 세금을 징수하는 일도 겸했다.
작은 키의 외젠느는 매사에 열심이었고 성실했으므로 블랭빌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가부장적 기질이 있는 그는 공증인이란 직업에 대단히 만족하여 은퇴할 때까지 22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청각에 이상이 생겨 제대로 듣지 못하더니 마르셀이 태어날 무렵에는 아예 귀가 멀어버렸다.
마르셀은 어린 시절에 관하여 말하기를 매우 꺼려했는데 어쩌다 말할 때면 그저 행복했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서 귀머거리 어머니가 그에게는 무심한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그는 어렸을 적에 의도적으로 어머니를 멀리하였는데 형들도 자기와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마르셀이 특별히 사랑한 여동생 수잔느가 태어난 것은 1889년 가을이었다.
자크와 레이몽이 열두 살과 열한 살이나 많았으므로 형들이 학교에 가고 없을 때면 마르셀은 수잔느와 놀았다.
마르셀은 두 살 아래의 수잔느를 각별히 사랑했으며, 여동생에 대한 그의 사랑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수잔느에 대한 마르셀의 억눌린 성적 감정은 훗날 작품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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