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는 로마에서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클레는 로마에서 독일 예술가 클럽Deutscher Kunstler Verein 야간반에 들어가 누드를 스케치했다.
1902년 3월 나폴리를 두 주 동안 여행하면서 국립 미술관에서 폼페이 벽화를 보고 매료되었다.
로마로 돌아와 국립 모던 아트 갤러리에서의 연례 전시회에 소개된 로댕의 누드 드로잉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4월 두 주 동안 피렌체에서 지내면서 팔라초 피티에 있는 우피치 미술관을 몇 시간 동안 둘러보면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에 관심이 커졌다.
특히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의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에 매료되었다.
기질상 보티첼리는 마사초와 그 추종자들의 과학 자연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15세기 후반의 동향에 속하며 때로 감상적인 섬세한 정서, 여성적인 우아함, 장식적 선을 중시한 고딕 양식 요소를 부활했다.
신화를 주제로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던 그의 후원자이며 피렌체의 로렌초 디 피에르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가 주문한 작품이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코시모 1세(1519~74)가 1560년 팔라초 베키오가 비좁아 공무를 집행할 수 있는 큰 사무실, 즉 우피치를 조르조 바사리에게 명하여 짓게 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프란체스코 1세 때 완성되었고 1581년 그의 뜻대로 동쪽 2층에 메디치 가의 방대한 미술품을 보존하게 했다.
로마와 우르비노에서 소장품을 가져왔고 메디치 가의 마지막 후예인 팔츠 후작 부인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져온 북유럽 작품 등으로 소장품이 풍부해졌다.
1737년 메디치 가가 단절된 후 토스카나 대공국 소유가 되었으며 18세기 말에 공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소장품 재편성이 이루어져 우피치 미술관에는 주로 회화작품이 남았고 조각, 공예품은 피렌체 시내 다른 미술관에 나뉘어 전시되었다.

클레는 1902년 5월에 베른으로 돌아왔으며 1906년까지 그곳에서 작업했다.
뮌헨, 베를린, 파리를 잠시 여행한 것을 예외로 베른에서 4년 동안 지내면서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탐험했고, 고전 조각과 건축에 관한 지식이 생겼으며, 고대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회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의대에서 해부학 강의도 들었다.
그는 조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이탈리아에서 본 르네상스 작품에서 받은 교훈이었다.
그는 회화가 정신적인 내용을 함축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조형의 원칙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확신했다.
그 해 여름 릴리가 베른에서 그와 함께 지냈다.
그는 1903년 7~9월에 ‘창조 Invention’란 제목으로 다섯 점의 에칭을 제작했고 1906년까지 모두 11점을 연속적으로 제작했다.
풍자적인 이 작품들을 그는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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