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칸딘스키는 뮌헨 분리파가 기획한
칸딘스키는 뮌헨 분리파가 기획한 전시회에 가서 유겐트슈틸 작품을 보았으며 유겐트슈틸은 뮌헨에서 가장 성행한 양식이었다.
유겐트는 젊음이란 뜻이다. 칸딘스키는 1898년 폰 슈투크의 지도를 받기 위해 뮌헨 아카데미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스스로 노력한 끝에 다시 입학을 시도하여 1900년에야 받아들여졌다.
독일에서 가장 뛰어난 데생 화가로 알려진 폰 슈투크의 지도를 받은 것은 1년 미만이었다.
칸딘스키는 뮌헨 아카데미에서 드로잉 기교를 배웠는데, 그에게 드로잉 반에 들어가라고 권한 것은 폰 슈투크였다.
드로잉을 배운 후 그는 폰 슈투크의 회화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폰 슈투크는 칸딘스키의 표현적 드로잉을 칭찬했지만 “지나치게 색을 남용하는” 데에 반대하여 한동안 검정색과 흰색으로 작업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형태에 대해 연구하라”고 충고했다.
칸딘스키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음을 후기 목판화와 검은색을 배경으로 한 컬러 드로잉에서 알 수 있다.
폰 슈투크는 칸딘스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융합해야 하는지에 관해 가르쳤으며, 칸딘스키는 훗날 그가 “하나의 어조로 그림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치명적인 무능력을 치료해주었다”고 말했다.
칸딘스키가 폰 슈투크에게서 배운 것은 하나의 모티프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폰 슈투크의 회화반에서 폰 슈투크의 조수 에른스트 슈테른Ernst Stern, 파울 클레, 알렉산더 폰 잘츠만, 한스 푸르만Hans Purrmann 등을 만났으며, 폰 슈투크의 반에서 나온 것은 1900년 가을이었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1863~1928)
바이에른의 테텐바이스 태생의 화가, 조각가, 판화가 프란츠 폰 슈투크는 1893년에 뮌헨 분리파의 창립회원이 되었고 2년 후 뮌헨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또한 베를린, 드레스덴, 스톡홀름, 밀라노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이었다.
19세기 말에 유겐트슈틸 운동의 선구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활약했으며 뮌헨의 자택을 중심으로 유겐트슈틸의 총체예술Gesamtkunstwerk에 대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장식적이고 평편한 색을 사용하여 회화의 분위기를 조절한 것은 어느 정도 후대의 발전을 예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