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나의 매혹적인 모스크바 


김광우의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미술문화) 중에서

칸딘스키는 1889년에 파리를 여행했다.
1892년 26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법률고시 시험에 통과했으며 곧 사촌인 안냐 치미아킨Anya Chimikian과 결혼한 뒤 두 번째 파리를 여행했다.
1893년에 모스크바 대학 경제 통계학과에 조교로 근무했고 학위 논문으로 <노동 임금의 적법성에 관하여 The Legality of Labourers' Wages>를 썼다.
1895년에는 모스크바의 쿠쉬베레브 인쇄소의 예술담당 책임자로 일했다.
1896년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린 모스크바의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회에 가서 특히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연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훗날 인상주의 전시회에서의 감동을 <회고록>(1913)에 적었다.
"모네의 <건초더미>를 카탈로그 목록을 보고 알았다.
그 작품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팔레트의 위력이었다.
그 작품이 나의 감추어졌던 부분에까지, 내 모든 꿈속에까지 파고들었다. 굉장한 빛과 힘을 전달했다. ...
내가 인상 깊게 받아들인 것은 나의 ‘매혹적인 모스크바’가 화면 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자
‘건초더미 Haystacks’ 연작
모네가 ‘건초더미’ 연작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90년 늦여름 지베르니에서였다. 1884~85년에 그린 적이 있는 건초더미를 1890~91년에 계속해서 그렸다.
그가 그린 6점은 햇빛이 건초더미의 측면을 비춘 모습이고 7점은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가 없는 모습이다.
그리고 18점은 해가 관람자를 향한 실루엣이다.
모두 겨울에 그린 이 연작에 나타난 색조가 따뜻한 느낌을 준다.
금빛 나는 지푸라기는 비와 서리를 맞아 엷은 회색으로 변했으며 땅은 붉은 갈색이다.
몇 점의 작품에서 눈과 서리가 발견된다.

모네는 이 연작을 시작으로 곧 이어서 ‘포플러’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1892년 2월에는 루앙 대성당 건너편 2층에 방을 세 얻고 대성당을 주제로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말년에는 ‘수련’ 연작을 그렸으므로 그가 연작으로 그린 주제는 모두 네 가지이다.

칸딘스키가 말한 ‘매혹적인 모스크바’는 1904~07년의 작품에 나타나게 될 서정성과 중세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상징적 표현을 말한다.
<풍경 속의 러시아의 아름다움>(1904년경)은 제목이 시사하듯 중세 러시아 건축물에 대한 애착을 배경에 담은 작품으로 색점을 모자이크처럼 사용했으며, <러시아 장면>(1904), <볼가 노래>(1906), <말 탄 한 쌍> 등에서도 러시아 건축물이 배경으로 사용되었으며 러시아인의 소박하고 정겨운 삶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채색에 있어 붓질을 짧게 한 인상주의 양식과 밝은 색을 점으로 찍어 색을 분할시키는 신인상주의의 점묘주의Divisionnisme를 혼용했음을 보며, 대상을 묘사하기 위해 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삶의 리듬 혹은 율동을 표현함으로써 활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1907년 이후에는 반 고흐처럼 붓을 구불구불 사용하여 색채에 더욱 생기를 불어넣었다.

<말 탄 한 쌍>은 1906~07년 겨울 파리 근처 세브르에 머물 때 그린 것이다.
시적인 세계를 묘사한 이 작품은 어렸을 적 이모에게서 들은 동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옛날 옛적의 신비한 세계 속에 말 탄 한 쌍이 포옹하는 장면이다.
고대 독일의 거리에서 벌어졌을 법한 중세 기사의 러브스토리이지만 배경이 19세기의 러시아이며 말 탄 한 쌍도 러시아 의상을 하고 있다.
두 사람 머리 위의 나뭇가지에는 금빛 잎이 달려 있다.
그들 뒤로 강이 흐르고 강물은 다양한 색의 모자이크로 처리되었다.
뒤로 멀리에 둥근 모자를 쓴 러시아 건축물들이 보인다.
여기에는 아르 누보와 상징주의 그리고 실제 세계를 비물질화하는 추상까지 다양한 양식이 혼재되어 있으며 색을 쪼개고 분할하는 데서 신인상주의의 점묘주의 양식도 사용되었음을 본다.
색을 그림의 내용을 감추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이는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