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지닌 미지의 힘에 끌려서

김광우의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미술문화) 중에서

바실리 칸딘스키는 1866년 12월 4일 모스크바 중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시기에 러시아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번성기를 맞고 있었다.
차르 알렉산더 2세는 개혁정치를 폈고 시베리아로 추방된 사람들에게 귀환을 허락했다.
칸딘스키 가족도 이때 귀환했는데 동시베리아의 몽고 국경 근처 차 재배지역인 키아크타에서 수십 년 동안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칸딘스키의 아버지 바실리 실베스트로비치 칸딘스키는 몽골계 시베리아 출신으로 차를 파는 부유한 상인이었고 어머니 리디아 이바노브나 티치에바Lydia Ticheeva는 발트 지방의 모스크바 사람으로 미모와 지성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유일한 자식인 칸딘스키는 세 살 때인 1869년에 부모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가족은 1871년 흑해 연안의 오데사 시로 이주했는데, 아버지가 그곳 차 공장의 책임자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오데사로 이주하고 얼마 안 되어 부모는 이혼했다.
칸딘스키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색은 “싱싱하고 밝은 초록색, 흰색, 양홍빛 빨강색, 검정색, 황토색”이라고 했는데, 색을 기억하는 주관적 직관적 능력도 놀랍지만 최초로 받은 인상 깊은 이런 색들은 평생 창조적 영감을 주는 근원이 되었다.

칸딘스키는 어머니의 언니가 되는 이모 엘리자베타 티치에바의 보호 하에 성장했다.
이모는 칸딘스키와 종종 독일어로 대화했으며 독일 동화를 들려주었다.
칸딘스키는 8살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배웠고 소묘도 익혔다.
10살 때 오데사 중학교에 입학하고 1885년까지 오데사에 살면서 아버지와 함께 모스크바에 1년 동안 머물면서 볼라야 강과 카마 강을 배를 타고 여행했다.
어릴 때부터 회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1879년에 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법학,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민속학, 인류학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 부속 연구소의 자연과학 협회와 민속학 인류학 협회의 연구 과제를 위해 러시아 북부 볼로그다 지방을 여행했다.
시리아계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는 그곳에서 농가의 건축, 공예, 장식 모형 등 다채로운 색상과 장식적 민예품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농민법과 이교도 신앙 유물에 관한 논문을 썼다.
논문이 훌륭했으므로 협회는 그를 멤버로 받아들였다. 동시에 그는 법학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처음 보았으며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명암에 의한 ‘강력한 화음 mighty chord’을 발견했다.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예술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고 <로엔그린 Lohengrin>을 듣고 ‘매혹적인 모스크바’의 밤 풍경이 발하는 색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 음악이 지닌 그런 힘이 나타나는 회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훗날 말했다.
이런 경험은 하나의 감각이 다른 영역의 감각에 작용하는 공감각synesthesia으로 그는 색을 대상의 것으로만 여기지 않고 음악과 연관시키기 시작했으며 음악은 이후 그의 창작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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