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과 케네디의 저격은
오후 7시경 솔라니스는 경찰에 자진 출두하여 워홀을 쏜 32구경 자동권총과 다른 주머니에 있던 22구경 리볼버 권총을 직접 경찰관에게 넘겨주었다.
그녀는 휴즈와 존슨이 구금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녀가 경찰서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병원에 있던 기자들은 몇 블럭 떨어진 경찰서로 몰려갔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솔라니스는 포즈를 취하면서 웃기까지 했다.
왜 워홀을 죽이려 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가 내 인생에 너무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대답했다.
9시 35분 컬럼버스 병원의 책임자 마시모 바지니 박사는 32구경 총알이 워홀의 왼쪽 복부에 박혔으며 워홀이 소생할 확률은 50%라고 발표했다.
이튿날 《뉴욕 데일리 뉴스》는 〈여배우가 앤디 워홀을 쏘다〉라는 제목으로, 《뉴욕 포스트》는 〈소생하기를 바라는 앤디 워홀〉이라는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다(그림 155).
6월 4일 법정에 선 솔라니스는 “내게는 잘못이 없다!”고 소리쳤으며 다음 날 다시 법정에 섰을 때도 변호사는 필요 없다면서 “워홀이 그렇게 된 것은 그의 책임이다. 그놈은 거짓말쟁이며 사기꾼이다. 그놈은 입을 열면 거짓말만 한다”고 주장했다.
판사는 솔라니스의 정신 상태를 감정하라고 지시했다.
1936년 5월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태어난 솔라니스는 어려서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남녀의 구별은 자연적으로 생긴 것에 불과한데 남성은 여성을 깔보는 못된 전통이 있다고 분노했다.
생물학적 우연으로 남자가 되었을 뿐이면서 자신들이 여자들보다 낫다는 편견을 가졌다고 남자들을 못마땅해 했다.
그녀는 남성을 혐오하는 그룹 스컴(S.C.U.M : Society for Cutting Up Men)의 멤버로 스컴의 선언문을 그리니치 빌리지 커피숍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워홀의 저격기사는 또 다른 저격기사에 가려 단 하루 만에 신문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암살당한 것이다.
뉴욕 주 상원의원이면서 검찰총장인 42세의 로버트는 6월 4일 민주당 캘리포니아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는데, 앰배서더 호텔에서 요르단 사람에 의해 저격당한 후 26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워홀과 케네디의 저격은 뉴욕 미술계의 암울한 뉴스거리였다.
프랭크 스텔라는 평론가인 아내 바바라 로즈에게 “바비(로버트 케네디)는 죽고 워홀은 살아나다니. 세상은 그런 거다”라고 말해 바바라가 “당신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요”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라이프》 잡지사에서는 워홀과 케네디의 기사를 어떤 비중으로 다룰 것인가에 관해 편집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는데 어느 편집자는 “미국사회에 미친 짓을 소개한 예술가가 정치적 영웅을 밀어낸다”고 투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