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가 깨어진 남자
로댕 뮤지엄에서
호텔 객실을 개조하여 전시실로 사용하는 2층은 마루바닥이고 그곳에 소장된 모든 작품은 로댕이 타계하기 한 해 전 정부에 기증한 것들이다.
로댕은 특히 도나텔로Donatello와 미켈란젤로를 좋아했으며 흉상, 서사시적 사람의 모습, 암시적이며 기념비적인 것, 차분하고 침착한 형상과 힘 있고 왜곡한 사람의 모습을 제작하면서 조각예술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는데 회화에서 폴 세잔과 견줄 만한 성과였으며 그와 세잔 모두는 새 예술의 원시인들이었다.
로댕은 조각을 "모든 자연적 운동의 잠열적 영웅주의"로 규정했으며 영웅적인 고전 수사에 애착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근래 현대 인생의 동력주의를 활기 있는 사실주의로 나타내려고 했다.
그가 비록 과거의 영웅주의 조각들에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고는 하나 쾌쾌묵은 전통주의 방법의 터무니없는 우화적인 요소들은 배척했으며 종교적인 주제와 신화를 거부했다.
<코가 깨어진 남자 The Man with the Broken Nose>가 그곳에 있었다.
이 조각은 그가 겨우 23살 되던 해인 1864년에 제작한 것으로 복잡한 그의 표현주의와 야만적 사실주의의 첫 증거가 되는 작품이다.
위대한 시인 마리아 릴케는 이 작은 흉상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얼굴에는 균형 잡힌 대칭적인 면이 전혀 없고, 반복되는 것들이 없으며, 비어 있거나 우둔하거나 또는 무심한 구석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릴케는 로댕이 어떻게 이런 형상을 창조했는지에 관해 언급했다.
"로댕의 본질적인 요소는 그의 세계의 근본이다.
그것은 평면으로 다양하게 강조하며 적절하게 가늠하고 모든 것을 산출하는 평면이 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