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고 광폭한 악몽

 
로댕 뮤지엄에는 마네와 반 고흐의 그림도 있다.
로댕이 소장했던 것들로 자심의 작품들과 함께 정부에 기증한 것들이다.
반 고흐의 자화상이 한 점 있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못그린 그림이다.
반 고흐와 고갱은 한쌍으로 우리에게 기억되는데 두 사람 모두 아마추어 화가로서 모더니즘의 새 시대를 연 화가들이다.
아마추어 화가들이 전통 미술교육을 받은 화가들을 제치고 현대미술의 시대를 열었다는 건 여간 통쾌한 일이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초기에 그림을 못그렸지만 정신만큼은 현대성을 지닌 위대한 혼이다.

입구에 따로 지은 작은 건물에는 로댕의 드로잉과 대리석으로 제작한 조각들이 있다.
로댕의 명성에 비해 뮤지엄의 규모가 과분하지 않다는 느낌이다.

밖으로 나와 쉴 곳을 찾다가 벤치 뒤에 <발자크의 기념비 Monument to Balzac>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댕이 7년이나 걸려 완성한 작품으로 실재 사람의 크기보다 커서 발자크가 거인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아마 거인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 로댕의 의도였을 것이다.
마치 인상주의 화가가 형상을 분명하지 않게 대충 그리듯 그는 형상을 분명하지 않게 제작했다.

이 작품은 작가연합의 대표 에밀 졸라Emile Zola가 1891년에 로댕에게 의뢰한 것인데 1898년 살롱전으로 통해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때 졸라는 작가연합의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였다.
작가연합측은 이 작품이 조야하고 괴물같으며 알아볼 수 없고 "천하고 광폭한 악몽" 같아 위대한 문호의 이미지를 로댕이 손상시켰다고 배척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성인들이라서 이내 조각이 천재의 모습을 활기 있고 영웅주의의 상징으로 웅대한 모습으로 표현했음을 알았다.
평론가 로살린 프랭켈 쟈미송Rosalyn Frankel Jamison은 이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로댕은 발자크의 창조적 열정을 비극적 흔적으로 얼굴에 남겼으며, 발자크의 몸을 극적으로 뒤로 제치게 했고, 커다란 겉옷을 그로 하여금 감싸도록 했는데 수도승이 입는 이 옷은 사실 발자크가 평소에 가운처럼 사용한 적이 있으며, 가운 안에서 기운이 퍙창하는 은유로 그의 열정을 상징했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가운 안의 팽창하는 기운을 뻣뻣해진 성기를 쥐고 있는 머리 없는 남자의 이미지로 탐험하며 타고난 창조적 긴장을 성적 기운으로 암시한다고 말한다. 이런 주제를 로댕은 이미 시적 영감의 이야기적 정황으로 격발시킨 적이 있고 그는 최종적으로 동상에 은밀한 몸짓을 더불어 사용했다.
로댕의 이미지는 점차 그의 개성적인 영감의 형상으로 밖으로는 마음에 내재한 창조적 동력주의로 나타났다."

언론으로부터 이 작품이 공격을 받았을 때 로댕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진실이 영원하다면 이 작품은 어느날 스스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난 예언할 수 있다.
... 이 조각은 내 인생의 총결산이다.
... 사람들은 발자크의 동상에서 잘못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가는 늘 꿈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진실한 원리를 믿는다.
발자크가 배척을 받든 안 받든 이 작품은 유럽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예술과 상업예술 사이의 한계선상에 놓여 있다.
나의 원리란 형태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까지도 모방되어야 한다.
나는 자연 안에서 그의 인생을 찾으며 그의 인생을 덩어리진 것과 움푹들어간 것들로 과장하면서 확대하여 전체의 합성을 찾은 후 좀더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 나는 이제 예술을 변명하기에는 늙었으며 성실함 자체가 변명이 될 줄 안다."

로댕은 1917년 11월 17일에 폐의 충혈로 67해의 인생을 마감했다.

P.S.
이건 조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효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에밀 졸라입니다.
그는 에미를 조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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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 2010-09-1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조크 넘 귀여우세요~~~근데 로댕은 참 말을 잘하는데여. 꿈보다 해명이라고 후대사람들이 잘 표현해 준 것인줄은 몰라도...예술가가 저 정도 언어로 자신의 의사나 행위를 잘 표현한다면 대단한 플러스겠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