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적요와 풍요

 
현대미술품이 소장되어 있는 4층으로 먼저 갔다.
1905년부터 현재까지의 작품이 4층과 3층에 있다.
책에서 많이 보아온 작품들을 그곳에서 대하니 한 마디로 황홀감을 맞볼 수 있었다.
실재 작품 앞에 서 있는다는 건 감격이다.
미술품을 감상한다는 말 appreciation은 영어로 고마움을 표시한다는 뜻이다.
작가의 노력에 감사하다는 뜻이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의 대표작들 중 한 점인 <사치, 적요와 풍요 Luxe, Calme et Volupte>가 우선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기 위해 그린 커다란 드로잉이 있다.
얼마나 책에서 많이 보았던가!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를 꼽으라면 어느 한 사람을 지적할 수 없어 마티스와 파블로 피카소 두 사람을 가리켜서 쌍둥이 아버지라고 한다.
마티스는 과연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인물이다.
피카소보다 12살이나 많다.

이 작품은 그가 1904년 폴 시냑과 함께 생 트로페Saint Tropez에서 여른 휴가를 보낼 때 시냑으로부터 점묘주의(붓질을 점으로 찍듯이 그리는 방법) 회화방법을 배워 밝은 색상으로 그린 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포함해서 그때에 그린 그림들을 앙데팡당전Independants에 출품했다.
사람들은 앙데팡당전을 "추하고 아름다우며 위대한" 전시회라고 부르곤 했다.
35살 때 그린 것인데
법대출신 마티스는 늦게 화가로 데뷔했다.

마티스는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다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와서 상징주의의 대가 모로의 도움으로 에콜 데 보자르에 비공식으로 입학했다.
그는 에콜 데 보자르에서 모로로부터 수학했는데 모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자연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연은 단지 예술적 표현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은 상기하는 내면의 느낌에 대한 표현의 표적을 단순하고 조형적으로 하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강의인가!
마티스는 훗날 모로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흔들렸다고 술회했다.
그는 루브르 뮤지엄으로 가서 샤르댕Chardin의 그림을 모방했으며 툴루즈 로트렉의 관람자의 눈을 속이는 회화적 기교에 매료되었다.
현재에도 루브르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모방하는 화가 지망생들이 많지만 그때에도 대가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은 실질적인 훈련이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할 수 있다고 했다.
기교를 중시하던 때의 말이다.
그러나 대가의 그림을 모방하다보면 단지 기교만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가 어떤 심상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그 장착의 과정을 또한 배우게 된다.

이 시기에 마티스의 그림에서 히도니즘적 성향을 발견하는데 그는 시각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그림을 그리기를 선호했고 이런 성향은 평생 지속되었다.
그는 1905년 성격이 괄괄하고 장사에 수완이 있는 아내 아멜리 파라이르Amelie Parayre의 초상을 그리면서 아내의 모습을 이그러뜨렸으며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리듯 사변적인 서투른 기교를 사용했다.
언론은 지나친 그의 자유분방함을 나무래기도 했다.

마티스는 조화를 모색하는 색의 새로운 창조는 자연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비롯해야 한다면서 색의 새로운 창조가 좀더 격렬한 독립된 회화의 실체를 강조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자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술가는 자신이 자연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떠나려고 할 때도 자신이 자연을 모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야 하며, 예술가 자신은 자연을 오직 잘 설명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그래야 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 자신과 피카소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는 스페인 사람이고 난 프랑스 사람이다.
네가 다른 점을 묻는 것은 마치 사과와 배가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 것이다.
그것들은 자연의 것들이다."

과연 마티스는 그림을 단순화하듯 질문에 대한 답을 단순 명쾌하게 그러나 가장 설득력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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