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노래, 춤, 영화의 마당 돔

워홀은 로큰롤 그룹과 연계하면서 무대예술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 시기에 비디오 아트가 독일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부분적으로 실험되었는데 그 전에 무대장면에 슬라이드를 활용한 시도가 있었다.
무대와 관련된 영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예술가들 가운데 올덴버그, 라우센버그, 백남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비디오와 무대를 연결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기계문명을 찬양했으며 최신 예술로 받아들여졌다.
백남준은 곧 언론과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비디오 아트가 시각예술에서 엄연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굳히게 되자 사람들은 그를 ‘비디오 아트의 교황’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워홀의 공장에 가수나 연주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했으며 에디는 가수 믹 재거와 밥 딜런을 공장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1966년 워홀은 로큰롤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연계하여 그들의 무대를 장식했다(그림 141).
노래를 통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벨벳 그룹 가수들은 냉소적이었다.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부르기도 하는 그들의 노래가사는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니코의 노래솜씨는 독특했으므로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했으며 무대에서의 그녀의 몸짓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니코〉(1966)라는 영화를 만들었고 니코는 곧 스타가 되었다.
니코가 스타로 부상하자 에디는 불안했다.
질투를 느낀 에디는 1966년 2월 워홀에게 그녀를 영화에 출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침내 워홀은 에디와 헤어지고 “도저히 에디와 함께 지낼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해 3월 워홀은 럿거스 주립대학에서 개최된 영화제에 초대받았으며 얼마 후에는 니코를 포함한 로큰롤 그룹이 미시간 대학의 초청을 받아 그룹 멤버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났다.
미시간 대학에서 돌아온 워홀은 흥겨운 사업을 벌였다.
맨해튼 2애비뉴와 3애비뉴 사이 23번가에 있는 2층 건물 마크 플레이스(Mark’s Place)가 비어있다는 정보를 얻고 그곳으로 가보니 무대와 많은 객석이 있고 무대 건너편에는 발코니가 있어 새 사업을 시작하기에 아주 훌륭했다.
그날로 그곳을 세낸 워홀은 내부수리에 들어갔다.
워홀의 부대 대원들이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벽을 흰색으로 칠하고 조명도구들을 달았으며 천정에는 거울 조각들로 둥글게 모자이크한 조명을 달아 빛이 사방으로 현란하게 펴져나가게 했다.
그들은 그곳을 돔(Dom)이라고 불렀다(그림 139).

워홀은 1966년 4월 7일자 《빌리지 보이스》에 “니코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함께 춤추며 신나게 놀고 싶지 않으세요?”라는 광고를 내고 그 외에도 몇 군데에 광고를 냈다.
첫 날 여배우 매리 워로노브가 무대에서 춤을 추기로 했다.
4월 한 달 동안 노래와 영화 잔치가 벌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
여인들의 옷차림은 당시의 유행을 따라 미니스커트가 단연 우세했고 꼭 끼는 웃옷에 무늬 있는 스타킹, 하얀 부츠를 신은 여자들도 많았고 긴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은 전통적인 차림도 있었다.
남자들은 청바지를 가장 많이 입었으며 타이를 맨 사람들도 적잖았다.
그곳에서는 섹스와 마약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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