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미술관에 그림은 없고 사람만 …”


워홀은 영화에 전념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캠벨 수프 통조림도 다시 수십 점 그렸는데(그림 138) 그 가운데 한 점은 캠벨사로부터 의뢰받은 것이었다.
그는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여러 점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는데 아주 밝은 색을 사용한 것 외에 새로운 시도는 없었다.
10월 워홀은 펜실베니아 대학 현대미술관 관장 사무엘 애덤스 그린이 주최한 자신의 전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에디, 말랑가, 와인과 함께 필라델피아로 갔다.
에디와 워홀은 주로 밤에 다투었고 낮에는 태연하게 연인들처럼 나란히 함께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중적인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전람회 전날 많은 사람들이 워홀을 직접 만나기 위해 미술관으로 왔다.
TV 카메라맨이 라이트를 들이댔으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밀려다니는 바람에 그림에 부딪치기도 했다.
관장 그린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그림을 망치든지 아니면 도난이라도 당할 것 같아 관리인에게 벽에 걸린 그림들을 모두 치우라고 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워홀에게 몰려와서 사인을 부탁했고 워홀은 두어 시간 사인을 해주다가 뒷문으로 달아나버렸다.
워홀은 나중에 “별난 전람회였다.
미술관에 그림은 없고 사람만 있었다.
1960년대는 사람의 시대였다”고 술회했다.

사람들이 몰려왔던 만큼 필라델피아에서의 전람회는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워홀과 에디의 관계도 좋아져서 다투는 일이 적어졌다.
얼마 후 워홀과 에디는 할로윈 파티에서 리히텐슈타인 부부와 로젠퀴스트, 인디애나를 만났다.
워홀이 영화제작으로 분주하여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도 그들은 각각 빠르게 성공하고 있었고 늘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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