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미국 취향의 데이비드 호크니
영국에도 일찍부터 상업미술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이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데이비드 호크니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 밖에도 피터 블레이크, 알렌 존스, 패트릭 콜필드, 런던에서 활약한 미국사람 로널드 키타이가 있다.
동성애자 호크니는 자신은 예술가가 아니라고 했지만 화가로 할 짓은 다 한 예술가였다.
1959년 런던으로 가서 로얄 아카데미에 입학한 호크니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로얄 아카데미에서 막 공부하기 시작할 때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그룹은 전통적인 그룹으로 미술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정물화와 사람들의 모습을 주로 그렸고 형태를 사용한 회화적 구성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다른 그룹의 학생들은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호크니는 같이 로얄 아카데미에 재학하던 유태인 로널드 키타이와 함께 실험적인 회화에 관해 의논했다.
키타이는 시를 무척 좋아했고 화가로 성공한 후에도 드로잉에 집념을 보이며 르네상스 대가들의 잃어버린 드로잉을 부활시키려고 노력한 예술가다.
호크니는 키타이를 무척 따랐으며 키타이로부터 그림에 글자를 써넣는 방법을 배워 자신의 그림에 응용했다.
추상을 시도해본 호크니는 별로 만족할 만하지 못해 실망했지만 자신의 고유한 회화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사람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회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제인 인간의 모습을 주로 그리면서 장 뒤뷔페로부터 영향을 받아 거칠고 초보적인 회화방법을 구사했다.
호크니는 사람을 힘 있게 그리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방법에 매료되기도 했다.
〈3월 24일 이른 시간에 춘 차차차〉(그림 130)에는 베이컨의 영향이 많이 나타났다.
동시에 추상도 사용했는데 그의 추상은 잭슨 폴록과 알렌 데이비드,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61년 1월 참여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전람회는 영국에 팝 아트를 고지한 전람회로 호크니가 팝 아트의 선두주자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환상주의 스타일로 그린 차 그림〉(그림 128)은 그가 팝 아트와 연계되어 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된 작품으로 광고 포스터와 어린아이의 드로잉과 관련이 있다.
1961년 뉴욕을 방문한 호크니는 자유로운 미국사회로부터 자극을 받아 머리카락을 하얗게 표백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월트 휘트먼과 카바피의 시를 읽고 영감을 받은 까닭이기도 하다.
시인 휘트먼을 좋아해 그를 주제로 동판화 〈나와 나의 영웅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동판화를 여러 점 제작한 호크니는 24세에 동판화로 기네스(Guinness) 상을 수상했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호가스의 〈레이크의 진전〉의 현대판 그림을 연속해서 그렸는데 미국에 체류할 때의 경험이 그림에 나타났다(그림 132).
1962년 〈첫 결혼〉(그림 131)을 그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모호한 분위기 속에 두 사람을 삽입시켰다.
두 사람은 하얀 모래와 야자수가 있는 섬의 사막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배경을 일부러 흐리게 했다.
두 사람이 신랑 신부처럼 보였으므로 제목을 〈첫 결혼〉이라고 붙였다.
1963년부터 77년까지는 오일보다 아크릴을 주로 사용했는데 아크릴은 냄새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금세 말라 사용하기 수월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드로잉 대신에 사진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