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철학
마키아벨리의 철학은 과학적이었고 경험적이었는데 공무원생활에서 얻은 체험이었다.
그는 사람에 관해 오늘날의 심리학자와도 같은 과락적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목적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극도한 개인주의이다.
그의 철학을 비판하기 전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지러웠던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마키아벨리의 국수주의는 이탈리아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가는 사기꾼같아야 한다는 솔직한 그의 주장은 오히려 지성적이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아틸리아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했고 힘 없는 나라가 힘 있는 나라들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손자병법과도 같은 상식적인 논리와도 같았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의 도시 플로렌스에서 1469년 5월 3일에 태어났고 집안은 13세기 때부터 대대로 부유했다.
집안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법학박사였던 아버지만 유일하게 집안에서 가장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떳떳치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총명했지만 가난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책을 통해 독학할 수 있었다.
1498년 사보나롤라Savonarola가 처형당하고 플로렌스 정부는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며 금욕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공화국에 과격한 재구성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를 촉구한 당파가 득세할 경우 마키아벨리는 29살의 나이로 고등법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공화국 내부문제에 관한 일이 그의 업무였는데 업무가 확장되어 공화국의 10인집행위원회의 비서역할도 그가 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시그노리아Signoria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외무부와 국방부의 장관 비서가 되어 외교문제와 국방문제들에 관여하게 되었다.
사법관들은 이탈리아 국내와 외국에 대사를 대신해서 가곤했는데 마키아벨리는 1500년에 처음으로 임무를 띠고 프랑스를 가게 되었고, 프랑스에 5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한 군주의 집권 하에 나라가 부강해진 것을 직접 목격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1494년부터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를 넘보던 스페인과 힘을 겨루면서 프랑스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이제 황성옛터였으며 이탈리아는 이 시기에 볼품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었다.
역사의식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분노할 일이었고 마키아벨리가 조국의 역사에 복통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