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11월에 난데없이 꽃 잔치가 벌어졌다.
워홀이 일레노를 떠나던 해 카스텔리 화랑에서 꽃을 주제로 한 전람회(1964. 11. 21~12. 17)가 열린 것이다.
꽃을 실크스크린하여 화랑 벽을 채우니 화랑이 한결 밝아진 느낌이었다.
한 쪽 벽면은 61cm 크기의 정사각형들에 꽃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하여 채우고 다른 벽에는 같은 이미지를 208cm 정사각형으로 확대하여 걸었다(그림 126).
가장 커다란 그림은 396cm 크기였는데 두 송이의 꽃을 확대한 것이었다.

워홀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준 꽃의 이미지 역시 아주 단순한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
《모던 포토그래피 Modern Photography》(1964년 6월호)를 뒤적이던 워홀은 이 잡지의 편집장 패트리시아 콜필드가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코닥 필름의 색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
콜필드의 사진에서 꽃들은 핑크, 빨강, 노랑으로 나타났다.
워홀은 그의 사진을 확대해 실크스크린하고 “난 정사각형으로 제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크고 작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람회를 관람한 어느 평론가는 “마티스의 색종이가 모네의 수련 연못 위에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대부분의 꽃그림들은 그해 6월과 7월 제작한 것들로 하루에 80장을 제작할 때도 있었는데 그야말로 미술품 ‘공장’이었다.
워홀은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공장으로 와서 나를 도왔는데 어떤 때는 열다섯 명이나 와서 색을 칠하거나 캔버스를 잡아당기는 일을 했다.”

그들은 워홀을 도와 꽃그림을 크게 또는 작게 모두 900점 이상을 제작했다.
사람들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꽃그림들을 좋아 했고 카스텔리 화랑에서 소개된 꽃그림들은 모두 팔렸다.
카스텔리와 조수 이반 캅은 꽃그림이 잘 팔려 즐거웠지만 자동차 충돌 장면,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 지명수배자의 초상화 등의 어두운 내용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므로 실망했다.
그들은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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