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브릴로 상자


원래 호기심과 경쟁심이 많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지 못하는 기질이 있는 워홀은 올덴버그가 음식들을 커다랗게 조각하자 그도 조각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워홀은 글럭에게 길 건너 슈퍼마켓에 가서 빈상자들을 구해오라고 시켰다.
글럭이 상자들을 들고 들어오자 워홀은 그런 것 말고 좀 더 잘 알려진 상자들이어야 한다면서 말랑가를 다시 슈퍼마켓으로 보냈다.
말랑가는 브릴로 비누, 모트 사과 주스, 켈로그 콘플레이크, 델몬트 복숭아 통조림, 켐벨 토마토 주스, 하인즈 케첩 등 유명 상품들의 상자를 가져왔고 워홀은 목수로 하여금 이들과 같은 크기의 상자를 수백 개 만들도록 주문했다(그림 142).

워홀은 상자가 만들어지자 실크스크린으로 상표를 제작하여 상자의 겉면에 붙였다.
이 상자들은 마치 말랑가가 슈퍼머켓에서 가져온 상품 상자들처럼 보였다.
이렇게 만든 상자들을 한곳에 쌓아놓으니 마치 식품도매상이라도 차린 것 같았다.

일레노 와드의 화랑 스테이블에서 400개의 상자가 소개되었을 때(1964. 4. 21~5. 9) 관람자들은 마치 식품창고 안을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자가 1개든 400개든 워홀의 상자 조각이 지닌 미학은 마찬가지였는데 뒤샹이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예술품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았다.
그러나 뒤샹이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단지 선택했다면 워홀은 ‘이미 만들어진’ 물질을 선택해서 그것을 대량생산했다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과연 팝아트 예술가다운 행위였다.
많은 젊은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워홀도 뒤샹을 존경했는데 발견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가의 창작이라는 뒤샹의 역설적인 미학이 뒤늦게 워홀의 작품에 나타난 것이다.
재스퍼 존스가 1960년 전구를 청동으로 뜬 것이나 맥주깡통과 음식통조림을 청동으로 뜬 후 색칠하여 마치 실제처럼 재현한 것도 따지고 보면 뒤샹의 영향이었고 평론가들로부터 네오다다란 말을 들을 법했다.
워홀은 대중적인 이미지를 재현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새삼스러운 느낌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워홀의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이 브릴로 상자들은 캐나다 토론토에서의 전시를 위해 예술품 중개상 제롤드 모리스에게 보내지면서 재미있는 일화를 낳았다.
캐나다의 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예술품에는 관세를 적용하지 않는데 세관원은 브릴로 상자들을 식료품으로 취급하여 상자당 250달러의 값을 매겼던 것이다.
그럴 경우 실제 가치의 20%를 세금으로 물어야 하므로 워홀의 브릴로 상자 80개의 경우 4,000달러나 되는 세금을 물어야 했다.
모리스가 상품이 아니라 조각품이라며 면세를 요구하자 세관원은 캐나다 국립화랑의 책임자 찰스 컴포트 박사를 불러 문제해결을 요청했다.
해결사로 나타난 컴포트는 브릴로 상자를 보고는 “내 눈에는 조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고 화가 난 모리스는 캐나다 정부를 기소하면서 정부가 미술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했다.

일레노의 스테이블 화랑에서 가진 두 차례의 전람회를 통해 워홀은 팝 아트의 선두주자로 인식되었으며 그가 바랐던 대로 뉴욕 스쿨에서의 위상이 당당해졌다.
그러나 워홀과 일레노와의 돈 계산에 문제가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와 화랑주인 사이에는 돈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대개의 경우 작품이 팔렸는데도 예술가가 돈을 만져보지 못해 생기는 문제다.
워홀이 일레노를 고소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청산되어 이제 워홀은 더 이상 일레노의 ‘앤디 캔디’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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