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작업실 ‘공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워홀이 영부인과 사진을 찍을 정도로 유명해졌다는 것이 팝 아트가 미국미술을 독점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워홀 혼자 팝 아트에 군림했다는 뜻도 물론 아니다.
그러나 워홀이 미국의 중요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임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일이었다.
순수미술이 대중화된 것은 이 무렵이었으며 대중문화를 순수미술로 포장하는 것도 이 시기에 가능했다.
1965년에도 워홀은 가장 유명한 〈열네 살짜리 소녀〉(1965), 〈가장 아름다운 소년들 13명〉(1965), 〈50가지 기이한 일과 50가지 개성들〉(1965)을 비롯해 많은 영화를 제작했다.
이제 워홀의 작업실 ‘공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해 그곳은 예술가의 작업실이라기보다는 클럽하우스를 방불케 했다.
워홀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한가했으므로 그곳에 죽치고 있는 일이 많았다.
패션모델, 배우, 예술가, 영화 제작자, 평론가, 시인, 잡지 편집자, 대학생, 그리고 출세를 꿈꾸며 지방에서 온 야심만만한 젊은 남녀들이 워홀을 찾았다.
그들은 모여서 파티를 열기 예사였고 대마초를 피우거나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동성애자도 적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워홀의 영화에 출연해 언더그라운드의 스타가 되기를 소원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도 이따금 공장을 방문했는데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점을 시인하기도 했다.
워홀의 주변에 모여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워홀리즘(Warholism)의 기류를 형성할 판이었다.
친구들은 워홀과 대화하기 위해 공장에 오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을 즐거워했다.
젊은 남녀들의 만남은 곧 연애로 진전되었고 때로는 삼각관계와 사각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룹으로 사랑을 나누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워홀은 “그들이 나와 놀아준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놀았다”고 말했다.
워홀은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찍기를 좋아했고 녹음기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대화내용을 녹음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