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에디는 워홀의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워홀은 곧이어 〈자살〉(1965)을 비롯한 많은 미공개 영화를 제작했다.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여동생 후아니타의 글을 참작해 〈후아니타 카스트로의 인생〉(1965)도 제작했다.
후아니타가 오빠의 독재정치를 반대하는 글이 1964년 8월 28일자 《라이프》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70분짜리 흑백영화 〈비닐〉(그림 119, 120)은 안토니 버게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말랑가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비닐〉에서 말랑가는 가죽 자켓을 입고 빅터(Victor)라는 불량배로 출연했는데 그의 대사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선생님. 당신 손에 책이 들려 있군요.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난 것이 아주 오랫만이예요, 선생님.”
말랑가는 잘 알려진 노래 〈달려갈 곳이 없는 Nowhere to Run〉에 맞추어 혼자 열광적으로 춤을 추었고 대사가 없는 엑스트라 역을 맡은 에디는 연신 담배를 피우면서 팔을 들어 허공을 저으며 말랑가의 춤에 응했다.
말랑가가 춤을 추는 뒤에서는 두 사내가 옷이 찢긴 신문배달 소년을 의자에 묶어놓고 고문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음악이 끝나자 빅터(말랑가)가 경찰관에게 “야, 시팔놈아!”라고 소리치면서 침을 뱉었다.
경찰관이 그를 체포하자 빅터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경찰관 나리”라고 말했으며 경찰관은 “넌 그렇게 되지 못할 거야. 넌 쓸모없는 놈이지만 우리가 널 착한 놈으로 만들 수 있지”라고 했다.
워홀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의 모든 영화는 조작이다.
어디서 조작이 끝나고 어디서부터 실제가 시작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한 만도 한 것이 인간의 가장 평범한 행위를 영화에 담았더라도 연출에 의한 재현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조작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홀은 계속 영화에 집착하며 반드시 헐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워홀의 영화에 자주 출연한 에디 시즈윅(그림 121)은 영리해 보이는 예쁜 얼굴에 유머가 있었으며 섹시한 허스키 보이스를 가졌다.
특히 깔깔거리며 소리 내어 웃을 때는 일품이었다.
1965년에 스물두 살이었던 에디는 165cm의 키에 45kg이 조금 넘는 비교적 가냘픈 몸으로 꼭 끼는 옷을 입어 매끈한 몸매를 과시했다.
에디가 거리를 활보하면 사내들이 여기저기서 휘파람을 불면서 추근댔다.
에디는 그런 사내들에게 씩 웃어주면서 자신의 의상연출이 효험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가는 다리의 곡선이 아름다워 미니스커트를 입었을 때 더욱 귀여워 보였다.
예쁘고 성적 매력이 있는 에디가 워홀 옆에 붙어있을 때면 워홀이 한결 돋보였다.
에디는 십대에 아버지로부터 성적 위협을 받은 뒤로 정신질환이 생겨 자주 병원에 드나들었다.
스무 살 때 하버드 대학 출신의 남자를 만나 섹스를 하고나서 임신한 것을 알고 과거 정신질환 기록 카드를 들고 병원으로 가서 자신은 정신질환이 있으니 낙태를 법적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캠브리지에 있을 때 환각제 LSD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생활을 하면서 동성애 남자들과의 섹스를 즐겼다.
이 무렵 두 오빠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았다. 오빠 민티(Minty)는 알콜 중독자면서 동성애자로 에디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는데 1964년 3월, 26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그해 12월 31일 큰 오빠 바비(Bobby)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바비는 헬멧도 쓰지 않은 채 모터사이클을 타고 번화한 맨해튼 5번가를 달리다가 버스의 옆구리를 들이받았고, 그 사고 이후 12일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다가 31세의 나이로 동생의 뒤를 따랐다.
에디는 워홀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에디는 워홀의 작업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종종 조연을 맡더니 나중에는 주연을 맡게 되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가련한 부잣집 딸〉(1965)은 70분짜리 흑백영화였다.
미국 귀족의 딸처럼 고상한 모습으로 사립학교에 재학하면서 불행한 과거가 있다고 고백하는 역할이었다.
에디는 워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어디를 가나 동행했다.
워홀과 에디가 파티에 나타나면 한 쌍의 최고의 감독과 여배우같이 그럴싸했다.
두 사람은 영화제작자와 배우의 관계처럼 행세했지만 친구들은 두 사람이 동거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1965년 4월 워홀과 에디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미국회화 3세기 Three Centuries of American Painting’전을 관람하러 갔다.
워홀은 노란 색안경을 끼고 물감이 묻은 작업복 검정바지 위에 정장 윗도리를 입었고 에디는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몸에 꼭 끼는 옷 위에 라일락색 파자마를 입었다.
사진기자들은 팝 아트 예술가와 그의 애인을 사진에 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존슨 대통령의 부인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영부인과 사진을 찍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그 후로도 영부인과 사진 찍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