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별이다!”라고


1964년 6월 어느 토요일 밤 워홀은 마냥 긴 무성영화 〈엠파이어〉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북쪽으로 16블럭 떨어진 타임라이프 건물 40층에서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8시간이나 촬영했다.
워홀은 성능이 좋은 오리콘 카메라를 빌렸는데 365m 높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모두 찍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번에 3분이 아니라 35분씩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콘 카메라를 사용해 본 조나스 메커스가 워홀에게 카메라 사용법을 가르쳐주었고 말랑가는 촬영을 도왔다.
35분짜리 필름 14통을 사서 12통을 사용했으니 전체가 8시간짜리 영화가 완성된 것이다.
오후 6시부터 촬영을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깔리자 빌딩의 사무실에 전등이 켜지지 시작했다.
빌딩은 전등 빛으로 조금씩 밝아졌으며 얼마 후 환해졌다.
워홀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별이다!”라고 소리쳤다.
새벽 1시경이 되자 사무실의 등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해 곧 건물 전체가 어두워졌으며 1시 30분경 워홀은 촬영을 끝냈다.
이 영화는 이듬해 3월 시청극장(City Hall Cinema)에서 상영되어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엠파이어〉에 관한 메커스의 평이 《빌리지 보이스》(1963. 8. 13)에 실렸다.

지난 토요일 난 앤디 워홀의 서사시 〈엠파이어〉가 상영되는 역사적 현장에 있었다.
… 카메라는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다.
〈엠파이어〉는 새로운 영화로 탄생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영화제작자 워홀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워홀은 메커스의 평에 만족했고 자신이 영화에서 조금씩 성공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워홀은 〈엠파이어〉의 촬영을 마치고 남은 필름 두 통으로 다른 영화를 한 편 제작하고 싶었다.
빌려온 카메라를 월요일까지 돌려주어야 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는 헨리 겔드잘러(그림 117)에게 전화해서 일요일 오후 공장으로 오라고 했다.
헨리가 “내가 할 일이 뭐냐?”고 묻자 워홀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시가를 피우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워홀은 일요일 오후 공장으로 온 헨리에게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촬영을 시작했다.
헨리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전 아주 놀랐어요.
앤디가 카메라 뒤에 서 있지 않았거든요.
앤디는 필름이 돌아가도록 카메라를 장치해 놓고는 전화를 걸러 가버렸고 이따금 카메라로 와서는 내게 손을 흔들었어요.
전 이상한 경험을 했다니까요.
한 시간 반이 후딱 지나갔어요.
카메라 뒤에는 아무도 없는데 난 한 시간 반 동안 혼자 앉아서 몸짓을 했어요.
모든 것이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고 숨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렇게 해서 100분짜리 무성영화 〈헨리 겔드잘러〉(1964)가 완성되었다.
메커스의 호평이 《빌리지 보이스》에 실린 며칠 뒤 영화제작자 피터 골드만의 반박문이 《빌리지 보이스》(1964. 8. 27)에 다시 실렸다.

난 메커스의 호평에 관대할 수 없다.
그 영화는 카메라도 렌즈도 필름도 없이 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초점도 맞추지 않은 카메라는 두 시간 동안 테일러 메드의 똥구멍만 비추었다.
… 8월 13일 지면에는 앤디 워홀을 지나치게 칭찬하는 글이 실렸으며 … 워홀이 영화제작자들 가운데 가장 혁명적이며 순정적인 자라고 썼는데 앞으로 워홀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한 수십 편의 영화를 보아야 할 것이며 이런 신문광고를 보게 될 것이다.
‘지루함을 보장한다.
14시간 동안 순전히 공허한 스크린!’

호평이든 악평이든 평론가들이 워홀의 영화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는 것은 그가 영화계에서 문제의 제작자로 등장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워홀의 긍극적 목적은 호평이 아니라 재능을 인정받아 헐리우드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1964년은 워홀에게 성공의 해였다. 카스텔리 화랑에서 꽃그림이 모두 팔렸을 뿐 아니라 영화 네 편이 9월에 열리는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되었다.
영화를 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그에게 이 일은 성공의 청신호와도 같았다.
워홀은 〈잠〉, 〈키스〉, 〈이발〉, 〈식사〉 네 편의 영화를 출품했고 페스티벌이 개최되는 동안 매일 5시 30분부터 자정까지 필하모닉 홀에서 상영되었다.
워홀은 라 몬테 영에게 페스티벌에 출품할 영화의 사운드 트랙의 작곡을 부탁했다.
그해 12월 7일 브로드웨이 89번가에 있는 뉴요커 극장(New Yorker Theatre)에서는 메커스의 주최로 언더그라운드 영화제작자들에 대한 수상 파티가 열렸는데 워홀의 영화 5편이 선정되었다.
선정된 영화는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된 4편과 〈엠파이어〉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