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이 ‘공장’에서 만든 영화들
1963년 말에는 소방서를 비워주어야 했기 때문에 좀 더 큰 장소를 물색하던 워홀은 231 이스트 47번가에서 마음에 드는 건물을 발견했다.
중앙역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남쪽 창으로 밴더빌트가 건축한 YMCA가 보이는 건물이었다.
전에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에는 엘리베이터와 공중전화도 있었는데 워홀도 그곳을 그냥 ‘공장(Factory)’이라고 불렀다.
뉴욕 시 소유의 그 건물을 단 슈레이더가 1년에 100달러에 세낸 것을 워홀이 슈레이더에게 건물의 일부를 다시 세 얻은 것이다.
워홀은 빌리 리니크에게 공장을 작업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게 했고, 그때부터 빌리는 공장장 노릇을 하게 되었다.
빌리는 거친 벽돌로 된 벽에 은색 스프레이를 뿌려 평평하게 보이도록 하고 천정으로부터 내려온 아치 세 곳에 알루미늄 호일을 부착했다.
방안은 온통 은색으로 빛났다. 책상, 의자, 복사기, 화장실, 마네킹, 공중전화까지 모두 쇠붙이 같은 은색으로 통일하고 바닥까지도 은색으로 칠했으므로 작업실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을 주었다(그림 108).
빌리는 공장 뒤쪽에 있는 두 개의 화장실 중 하나를 보수하여 자신의 침실로 사용하면서 공장의 살림을 맡아 했다.
워홀이 12월에 공장으로 이주하고 처음 제작한 33분짜리 흑백 무성영화 〈이발〉(1963)도 아마 같은 12월에 제작한 것 같다.
〈이발〉 또한 독특한 영화로 디자이너 존 다드의 머리 깎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워홀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을 주제로 선택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행위를 조명했다.
그러나 반복이라지만 똑같은 행위가 거듭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행위들의 집합 안에서 매 행위는 새롭게 진행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보여주려고 했다.
다음 영화는 〈식사 Eat〉(그림 116)로 출연자는 스테이블 화랑에서 만난 로버트 인디애나였다.
인디애나는 1962년 〈푸른 다이아몬드 식사〉와 〈붉은 다이아몬드 죽음〉을 그렸던 예술가로서 영화 제목이 인디애나의 작품 제목과 같기 때문에 인디애나에게는 의미 있는 영화 출연이었다.
‘표시판 회화(Sign Painting)’를 추구한 인디애나의 작품들은 대중적인 이미지를 회화적 구성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자연히 팝 아트와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까 인디애나의 개념미술은 팝 아트에 근거한 것이다.
〈식사〉는 1964년 2월 2일 일요일 아침 맨해튼 남쪽에 있는 인디애나의 화실에서 촬영되었다.
인디애나에 의하면 워홀이 그에게 준 지침이라고는 단 한 마디 “이 버섯을 먹어라!”였다고 한다.
3분짜리 필름 9통을 찍었으니 인디애나는 27분 동안 버섯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워홀의 〈잠〉과 〈식사〉는 모두 사람의 기본적인 동작을 필름에 담은 것이었다.
〈식사〉를 마친 워홀은 섹스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제목부터가 사람들을 성적으로 자극하는 〈입으로 빨다〉(1964)였다.
여자가 입으로 남자의 성기를 빨 때 남자의 얼굴표정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로 여자의 행위는 화면에 나타나지 않고 30분 동안 붉은 벽돌담에 기댄 젊은 남자의 흥분된 모습만 볼 수 있다.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의 얼굴 표정은 환희에 차 있으며, 다른 몇 남자들이 번갈아가며 남자의 성기에 자극을 주었으므로 남자는 30분이 지나자 절정에 달해 정액을 발사하는 흥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그룹섹스와도 관련이 있다.
1964년 한 해 동안 워홀은 영화를 꽤 많이 제작했으며 제목을 붙이지 않은 영화도 많았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사람들의 동작은 극히 제한되었으며 클로즈업된 얼굴은 오랫동안 무표정하게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미동이 없는 장면들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마치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따라서 어쩌다 배우가 눈이라도 깜빡할라치면 마치 클라이막스에라도 이른 것처럼 부각되었다.
워홀은 10분 동안 눈을 세 번밖에 깜빡거리지 않은 배우를 가리켜 최고의 배우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워홀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전체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