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공부한 르누아르·바지유·시슬레  

김광우의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미술문화) 중에서 


모네의 고모는 1861년 살롱전 수상자 오귀스트 툴무슈에게 모네를 돌봐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모네는 툴무슈의 추천을 받아 1862년 가을 유능한 교사이며 화가 가브리엘 샤를 글레이르의 화실에 입학했습니다.
스위스 태생의 글레이르는 1843년 살롱전에서 <저녁>을 선보인 후 상당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풍경화를 주로 그렸고 제자들 중에는 풍경화로 로마대상을 수상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로마대상은 에콜 데 보자르 재학생들에게 최고의 상입니다.
에콜 데 보자르는 1648년에 설립된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후신으로 아카데미에 재학하는 학생들 모두 가장 영예로운 로마대상을 받는 것을 목표로 공부에 열심했습니다.
1749년 코이펠이 제정한 이 상은 매년 수상자를 선발하는 컨테스트에서 합격한 학생에게 주어지는데,
우선 작은 화실을 제공받아 그곳에서 10주 동안 작업하다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3~5년 동안 유학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집니다.
여기에 드는 모든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답니다.
정부가 비용을 대고 유능한 화가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유학을 마치고 그림을 제출하여 재능이 인정되면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작품을 비싼 값에 팔수 있으며 정부가 발주하는 작업을 딸 수 있어 경제적으로 쉽게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부댕과 마찬가지로 글레이르가 풍경화를 강조했기 때문에 모네는 그곳에서 수학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글레이르가 수강료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학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글레이르는 권위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모네는 스승의 지도에 순순히 따르는 타입이었습니다.
글레이르는 제자들의 장점을 파악하고 적절한 방법으로 가르쳤는데 휘슬러, 르누아르, 바지유, 시슬레가 그로부터 수학하고 있었습니다.

글레이르는 교과서적인 틀에 박힌 교육에 반대했으며 에콜 데 보자르의 교사들과는 달리 자신의 독특한 방법을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남자 누드 모델을 그리게 한 후 제자의 등 뒤에 서서 말했습니다.

“아주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너무 모델처럼 그렸어.
네가 보고 있는 저 사람은 작고 뚱뚱하지 않아?
그러니까 작고 뚱뚱하게 그려야지.
저 사람 발이 크군.
그러니까 그렇게 그려야지.
저 발은 참으로 못생겼군!“

함께 수학한 알프레드 시슬레는 파리에서 영국인 부자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적 영국으로 보내져 언어와 상업을 공부했는데 아버지가 사업가로 만들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업보다는 회화에 더 관심이 많은 시슬레는 곧 파리로 돌아왔고, 글레이르의 화실에서 아마추어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르누아르의 말로 그는 ‘유쾌한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여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르누아르가 <알프레드 시슬레와 그의 아내>를 그릴 때 아내가 남편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달리는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르누아르는 모네보다 1살 아래로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바짝 마르고 늘 병색이 있는 그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 모네와 마찬가지로 별말없이 친구들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습니다.
그는 파리 시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몽마르트르에 거주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모델로 그렸습니다.
몽마르트르에는 상점 종업원, 식당 종업원, 잡부, 모델, 연예인들이 대거 거주했고 카페가 많았으며 밤이면 활기를 띠었습니다.
모네와 이들은 글레이르가 1863년 화실을 그만둘 때까지 함께 수학했습니다.

모네는 프레데릭 바지유와도 우정이 두터웠는데 키가 유난히 크고 잘생긴 바지유는 남쪽 몽펠리에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했습니다.
르누아르와 동갑내기인 바지유는 1862년 파리로 와서 회화를 배우면서 의학도 공부했는데 부모가 의사가 되라고 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파리의 상류층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모네는 바지유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여러 차례나 받았습니다.
바지유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모네를 가리켜 “가장 절친한 환쟁이 친구”라고 적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퐁텐블로 숲 근처 샤이의 작은 집에서 르 아브르 출신의 모네와 여드레를 함께 지냈습니다. 풍경화에 뛰어난 그 친구가 제게 몇 가지 귀뜸해준 덕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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