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타잔과 제인〉


워홀의 작업실 ‘소방서’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났다.
어빙 블럼도 워홀을 방문해 영화배우들의 초상화는 뉴욕보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시하는 게 더 낫다고 하면서 페러스(Ferus) 화랑에서 다시 개인전을 열자고 제의했다.
워홀은 블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9월 마지막 주 워홀은 페러스 화랑에서의 전시(1963. 9. 30 ~10. 31)를 위해 무비 카메라를 메고 친구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이 전시에서는 엘비스와 리즈의 초상화를 소개했다. 이미 〈붉은 엘비스〉라는 작품을 수십 점 제작했던 워홀은 이번에는 로크롤의 왕 엘비스를 기타를 든 모습 대신 권총을 들고 막 총을 쏠 태세인 카우보이 모습으로 제작했다.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온 엘비스의 모습을 실제 사람 크기보다 더욱 크게 확대하여 관람자들로 하여금 그가 영웅처럼 보이도록 했다.
당시 인기가 대단했던 미남배우 말론 브란도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 모습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그림 111).
권총과 모터사이클은 남성을 상징하는 물질로 여자들에게 엘비스와 말론 브란도를 성적 우상으로 인식시키기에 적절했다.
블럼은 워홀이 엘비스를 한 상자 보냈다면서 모두 합하니까 198cm 높이에 폭이 457cm에 달하더라고 말했다.
리즈 초상화는 1m 정사각형으로 모두 12점이었다.

워홀은 윈 챔벌레인의 스테이션 왜건을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했는데 그와 말랑가는 운전을 할 줄 몰랐으므로 챔벌레인과 테일러 메드가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다.
시인이며 영화배우인 메드는 미시간 주 그로세 포인트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난 다섯 살 때부터 이미 스타였다. 담임교사들은 항상 나를 위해 각본을 썼다”라고 말했다.
드라마를 전공한 메드는 1960년대 초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알려진 배우라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워홀은 1956년에 세계를 일주하긴 했지만 아예 펜실베니아 주 서쪽 밖으로는 나가본 적이 없어 서부로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자마자 워홀은 영화배우이자 사진작가인 데니스 하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두 달 전 뉴욕에 와서 워홀의 화실을 방문하고 〈모나리자〉를 한 점 구입했다.
배우이자 작가인 아내 브룩 헤이워드(그림 115)는 영화배우들이 모인 파티에서 워홀을 대단히 칭찬하며 유명배우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퍼 부부를 만나 반가운 해후를 나눈 워홀은 10월 초 캘리포니아 남쪽 파사데나 뮤지엄(Pasadena Art Museum)에서 열리고 있던 뒤샹 회고전을 같이 관람했고 그곳에서 뒤샹과 그의 아내 티니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드완 화랑(Dwan Gallery)의 전시회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와 있는 올덴버그와 그의 아내 팻도 만났다.
워홀은 전람회를 자축하는 파티에서 뒤샹 부부와 올덴버그 부부와 함께 샴페인을 과음하고 말았다.
그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차를 세우고 길에 쭈그리고 앉아 토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주 머무는 동안 워홀은 2시간짜리 흑백 유성영화 〈타잔과 제인 Tarzan and Jane〉(1963)을 제작했다.
깡마른 메드가 정글의 왕자 타잔 역을 맡았고 곱슬머리 나오미 레빈이 제인 역을 맡았다.
영화제작자로서 두 달 전 워홀과 만난 레빈은 〈보편적인 사랑〉에서 괴물 거미의 역을 맡았었는데 워홀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와 제인 역을 맡겠다고 자청했다.
말랑가의 말로는 레빈은 워홀에게 홀딱 반한 많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워홀은 자신이 묵고 있는 비벌리힐스 호텔 목욕통에서 벌어지는 장면과 레빈이 옷을 홀랑 벗고 수영장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도 필름에 담았다.
하퍼, 올덴버그 부부, 예술가 월리 버먼도 단역을 맡아 워홀의 영화에서 열연했다.

페러스 화랑에서의 전람회는 그림이 한 점도 팔리지 않아 실패로 끝났다.
블럼은 워홀의 실크스크린이 기계로 제작한 것 같아 예술품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평론가는 워홀이 자신을 예술가로 알리는 데 실패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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