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백인 경찰관과 흑인 시위자들의


워홀의 〈붉은 인종폭동〉(그림 90)은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실제 있었던 평화시위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백인 경찰관들이 사나운 개를 끌고나와 평화롭게 시위하는 흑인들을 진압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작가 찰스 무어의 사진이 1963년 5월 17일자 《라이프》 잡지에 실렸다.
독일산 셰퍼드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평화시위와 매우 대조적이다.
워홀은 백인 경찰관과 흑인 시위자들의 대치 장면에 붉은 색을 사용하여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원자폭탄〉(그림 106)은 원자폭탄이 버섯 모양으로 피어오르는 장면으로 그림의 버섯구름은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살상할 수 있는 위력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루wm벨트 대통령 시절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대통령의 인가를 받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제조했고, 그 뒤를 이은 트루먼 대통령은 세계대전을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이 가공할 현대의 첨단무기로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 살상되었으며 그들의 후손들도 핵 휴유증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겨 고통당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학이 인류를 살상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고 이러한 우려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워홀은 〈원자폭탄〉에서 인류의 자멸을 경고했다.

워홀이 재키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뉴 프론티어 정책을 폈던 젊은 대통령은 차에 승차한 채 총에 맞아 쓰러졌는데 세계를 경악케 한 이 사건이 당시 부통령 존슨의 무혈 쿠테타라는 설도 있다.
워홀은 이듬해 〈재키의 스무 장면들〉(1964)과 〈재키의 열여섯 장면들〉(1964)을 제작하면서 미망인이 된 재키의 슬픈 모습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병렬하기도 했으며 재키의 한 가지 모습을 재현하기도 했다.
워홀은 “나는 케네디가 대통령으로서 핸섬하고 젊고 또 영리했기 때문에 감동했다.
그가 암살당한 것이 내게 괴로움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나를 괴롭힌 것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슬픔을 강요하듯이 그의 사망소식을 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기의자〉는 관람하는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부주의로 인한 사고들이 많지만 사형집행 또한 부주의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시사하는 것 같았다.
붉은 색을 사용한 〈라벤더빛 재난(전기의자)〉(그림 107)은 사람을 살해하는 의자가 두려운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워홀의 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요소이다.
비록 흉악범일지라도 정부가 시민을 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오늘날 사형제도의 문제이기도 한데, 무고한 사람을 사형시킨 후 뒤늦게 범인을 찾아낸 경우도 있어 사형도 사람의 부주의로 집행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워홀은 사형을 집행하는 데 쓰이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의자를 마치 자동차 사고 현장처럼 재현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을 제작한 지 오래되었으므로 제작 기교가 뛰어났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도 원하는 대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모나리자〉는 익히 알려진 작품이지만 1963년 2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소개된 후로 더욱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워홀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이 이 아름다운 이탈리아 여인을 보고 싶어 했으며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표정을 직접 보기를 원했다.
워홀은 마를린과 엘비스의 초상화를 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신성시된 모나리자의 이미지를 평범한 여인의 모습으로 격하시켰다.
그러한 점은 30개의 모나리자의 초상화를 반복한 〈서른 개가 하나보다 낫다〉(1963)에서도 발견되었다.
조수 말랑가의 말로는 워홀이 모나리자를 가지고 실컷 놀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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