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전매특허 실크스크린
재니스 화랑에서의 ‘신사실주의 예술가들’전과 모마에서 개최된 ‘팝 아트 심포지엄’은 뉴욕 미술계를 활기차게 했다.
이듬해 봄부터 뮤지엄과 화랑들이 저마다 팝 아트 예술가들의 전람회를 열려고 했는데 1963년 3월 솔로몬 구겐하임 뮤지엄이 6명의 팝 아트 예술가들을 초대한 전람회는 특기할 만하다.
‘여섯 명의 화가와 오브제 Six Painters and the Objects’라고 명명한 이 전시의 주인공들은 라우센버그, 존스, 다인, 리히텐슈타인, 로젠퀴스트, 그리고 워홀이다.
전람회를 기획한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로렌스 알로웨이는 워홀로 하여금 만화그림 〈딕 트레이시〉(그림 67), 〈전과 후 3〉(그림 70),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한 마를린 먼로와 리즈 테일러의 초상화, 신문표지의 자동차 사고 그림을 출품하도록 했다.
알로웨이는 카탈로그에 6명의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주제가 아닌 이미 잘 알려진 보편적인 주제들로 작품을 제작했다고 기술했다.
주간지 《타임》이 전람회를 보도하면서 팝아트란 말을 사용했으며, 워홀의 그림에 대해 언급했다.
예술적 재료가 아닌 것을 예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 전혀 새로운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이따금 그러한 물질을 변형시킨다.
예술가는 수프 통조림을 크게 확대하여 그리거나 반복해서 그리지만 통조림은 여전히 켐벨사의 통조림 그대로다.
평론가 바바라 로즈는 이렇게 인용했다.
난 팝아트가 하나의 예술 스타일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이 예술가들은 단지 주제로 통일되었을 뿐 유사한 스타일로 통일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바로크나 입체주의처럼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다.
아무튼 워홀의 실크스크린은 사람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졌으며 워홀의 특허처럼 알려지기 시작했다.
잡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워홀은 “그림은 너무 딱딱하다.
난 기계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계는 문제가 적다. 난 기계가 되고 싶은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아트 뉴스》의 편집자이자 평론가 스웬슨과의 인터뷰에서는 “내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기계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지 기계처럼 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 말로 기계문명을 극찬했다.
그를 가장 잘 이해한 조수 제라드 말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앤디는 예술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완전히 없애려고 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실크스크린뿐 아니라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동적으로 재생하려고 했다.
워홀은 비감상주의를 조장했으며 개인적인 것들로 대중과 교통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일레노 와드는 워홀의 자동차 사고 그림은 너무 끔찍해서 그녀의 스테이블 화랑에서 소개하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망설였는데, 때마침 일레나 소나벤드가 파리에 있는 그녀의 화랑에서 워홀의 전람회를 개최하겠다고 제의했다.
워홀은 자동차 사고에 관한 작품들을 파리에서 소개하기로 했으며 전람회 주제는 ‘미국에서의 죽음 Death in America’이었다(1984. 1~2월).
죽음과 자살은 으시시하지만 워홀이 선호하는 주제였다.
친구들은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발견하면 모아두었다가 워홀에게 갖다 주곤 했다.
1947년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86층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젊은 모델의 몸이 자동차 위로 떨어져 있는 장면이 그해 4월 12일 《라이프》 잡지에 보도되었다.
1963년 1월 18일 《라이프》 잡지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관한 기사에서 그때의 장면을 다시 게재했고 워홀은 그 기사를 다시 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