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왜곡
왜곡은 다섯 가지 이유에서 행해진다.
첫째, 장식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1907~08)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는 딸 다나에가 낳은 아들, 즉 손자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신탁을 알게 되자 딸을 청동 성채에 가두었다.
다나에를 사랑한 제우스는 금빛 소나기의 형상으로 그녀를 찾아 갔으며 다나에는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를 낳아 길렀다.
아크리시우스 이 사실을 안 것은 4년 후였다.
그는 딸과 손자를 상자에 가두어 바다에 던졌다. 다나에는 아들과 함께 바다를 표류하다 세리포스 섬에 사는 어부 딕티스에 의해 구조되었다.
딕티스의 형인 폴리덱테스는 이 섬의 통치자였다.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거절했다.
폴리덱테스는 잔치를 열고 세리포의 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면서 말을 한 필씩 갖고 오게 했다.
다나에의 아들 페르세우스는 머리가 뱀인 괴물 고르곤 세 자매의 머리를 베어 말을 사겠다고 공언했다.
폴리덱테스는 페르세우스가 농담한 것인 줄 알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그 일을 집행하게 되었다.
페르세우스의 일에 로마 신화의 머큐리에 해당하는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와 아테네의 수호신으로 지혜, 예술, 전술의 여신인 아테네가 도와주기로 했다.
헤르메스에게서 둥근 칼을 받은 페르세우스는 고르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고르곤 세 자매 가운데 메두사만은 불멸하지 않는 존재이지만 누구든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게 되면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직접 바라보지 않고 방패에 비친 모습을 보았다.
또 다른 신화에 의하면 아테네가 페르세우스의 손을 인도했다고 전해지며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목을 베어 가죽부대에 담았다.
페르세우스가 세리포스로 날아와 고르곤의 머리를 꺼내 보여주자 폴리덱테스와 섬의 귀족들이 돌로 변해버렸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아테네에게 바쳤다.
다나에와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게임에 참가한 페르세우스가 원반을 던지게 되었는데 아크리시우스 왕이 그 원반에 맞아 죽었다.
그리하여 신탁이 이루어졌다.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
1897년 빈 분리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한 클림트는 아르 누보를 바탕으로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양식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은 전혀 수용되지 않았으며 1900~03년에 제작한 빈 대학의 벽화들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거부되었고, 1902년 분리파 봄 전시회에 출품한 베토벤 프리즈 또한 거부당하자 클림트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클림트의 작품은 오늘 날 구식으로 보이며, 오스카르 코코슈카나 에곤 쉴레와 같은 오스트리아 젊은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만 중요하게 평가되지만, 옅은 회화 공간이 특징인 그의 장식적 인물화와 1903년 이후에 제작한 모자이크 같은 풍경화는 미술사에 길이 남을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클림트의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의 자유와 학문의 전당 대학 사이의 갈등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술가의 자유가 대학이 추구하는 학문보다 존중되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가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락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오늘 날에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