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제임스 로젠퀴스트도 워홀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로젠퀴스트도 워홀과 마찬가지로 상업미술에서 순수미술로 들어간 예술가였다.
1960년부터 주로 잡지에서 주제를 구하여 커다란 그림을 그린 그는 “우리는 라디오와 TV 그리고 시각 매체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 그것들은 힘 있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것들을 바라볼 때 나는 놀라고 흥분하며 그것들에 매료된다 ”고 말했다.
“나는 그림에서 낭만적인 요소를 피하려고 한다”고 말한 그의 그림에는 자전적인 개인 상징이 있다.

1961년 앨런 스톤이 로젠퀴스트의 화실을 방문했고 곧이어 일레나 소나벤드와 이반 캅도 방문했으며 캅은 그를 워홀에게 소개했다.
스톤은 로젠퀴스와 인디애나를 묶어 두 사람의 전람회를 열어주었는데 성공적이었다.
워홀은 전람회에 가서 로젠퀴스트가 음식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회화 주제에 대해 다시 숙고했다.

1962년에 그린 〈모세관 현상〉(그림 100)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 풍경화로 영화 포스터처럼 커다란 그림에 여러 개의 작은 캔버스를 부착했다.
〈머스 커닝햄의 무도회〉(그림 101)는 커닝햄의 구두를 신은 발을 확대한 캔버스를 따로 삽입하여 관람자들이 환각을 일으키도록 했다.
그는 이미 알려진 이미지들을 혼용하여 콜라주 방법으로 구성하기도 했다.

로젠퀴스트의 그림에 정치적인 요소가 등장했는데 특히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19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후 부통령이던 린든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가 이듬해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 당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끼어든 것은 대학생들의 시위를 자초했는데 로젠퀴스트도 반전운동에 동참하여 정치적인 주제를 그림으로 시위했다.
그의 대작 〈F-111〉(그림 102)은 그런 그림들 가운데 하나다.
26m가 넘는 이 벽화는 카스텔리 화랑 벽을 꽉 채웠다.
그는 그림에 파이어스톤(Firestone) 타이어를 집어넣고 케이크를 그려 넣었으며 스파게티를 확대하여 캔버스 바닥에 깔고 비치파라솔 아래 원자폭탄이 터지는 장면을 그려 넣어 전쟁이 인간의 소박한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상징했다.
소녀의 머리카락을 말리는 헤어드라이어는 마치 미사일의 윗부분처럼 보였다.
로젠퀴스트는 미국 전투기가 북베트남을 공격한 것을 비난하면서 벽화로 시위한 것이다.

그는 훗날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사물을 재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실주의 예술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의 그림은 옛 대가들의 그림에서 강조되었던 커다란 아라베스크와 마찬가지로 사물의 부분이다. 강조하는 곳에 감성, 색,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 난 가끔 예술을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리와 동작 없이 시각적으로 직접 대화하려고 그림을 진전시킨다.
화가란 그림을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고 모든 사람들은 직관으로 그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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