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에게 친절한 마리솔은


일레노의 스테이블 화랑에서 전람회를 가지면서 워홀은 스테이블 화랑에 소속된 마리솔과 인디애나와 함께 어울리는 일이 잦았다.
두 사람은 나중에 워홀이 제작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유난히 워홀에게 친절한 마리솔은 파티에 초대받을 때면 항상 인디애나와 워홀과 함께 가려고 했다.
당시 뉴욕 스쿨에 여전히 추상표현주의가 두드러질 때였고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은 팝아트 예술가들의 행위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느 날 추상표현주의 예술가 이반 토마스가 주최한 파티에 마리솔이 인디애나와 워홀을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세 사람이 막 파티 장소에 들어섰을 때 워홀은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귀신들린 소녀가 어머니가 주최한 파티에서 선 채로 오줌을 싸는 장면을 연상했는데 나중에 자서전에서 자신이 그 소녀처럼 여겨졌다고 술회했다.
마크 로드코는 마리솔에게 “넌 어떻게 저런 녀석들을 여기에 데리고 올 수 있어?” 하고 화를 냈다.
로드코는 특히 팝아트 예술가들을 싫어했으며 팝아트 예술가들이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을 살해하려 한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워홀의 친구 마리솔과 인디애나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미지들을 주제로 예술행위를 하면서 팝아트가 대중화되도록 노력했다.
워홀보다 열 살 어린 인디애나는 사실주의 방법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기교가 아주 뛰어나 미국의 정밀주의 예술가들의 후예라는 말을 들었다.
인디애나는 스텐실로 글자나 디자인 같은 형태를 제작하여 그림이라고 주장하면서 개념에 대한 생각을 촉구한 개념미술의 선구자이다.
그는 단어를 초보적인 상징으로 사용했다.
어릴 때 기차를 타고 가다가 거리에 걸려있는‘식사’라는 간판을 본 기억을 되살려 제작한 〈식사〉는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우리 기억 속의 많은 것들과 연계되어 있음을 알리려고 한 작품이다.
인디애나는 1960년대 뉴욕에 거주하고 있던 엘스워스 켈리와 우정을 나누었으며 켈리로부터 색을 평평하게 또 기하학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인디애나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던 단어들은 매우 개인적인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1962년 〈푸른 다이아몬드 식사〉와 〈붉은 다이아몬드 죽음〉(그림 95)을 그렸는데 “‘식사’는 내게 가장 개인적인 단어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말이기도 하다”며 그 말이 기억 속에 오래 맴돌았다고 말했다.
‘죽음’은 ‘식이요법(Dietary)’을 줄여 사용한 말이라고 했는데 식이요법의 앞글자 Die는 ‘죽음’이란 뜻이므로 인디애나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작품에서 죽음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라도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Die의 뜻은 ‘죽음‘인 것이다.

인디애나는 마름모꼴 안에 원형을 그리고 그 안에 단어를 삽입했는데 보통 마름모꼴 은 자동차 운전자에게 주의를 주는 표시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Go’와 ‘Stop’ 표시판이 그 예이다.
인디애나는 그러한 안내표시판에 개인적인 단어들을 넣었다.
개념의 중요함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그의 작품은 비록 하나의 형태가 오랫동안 어떤 상징으로 사용되었더라도 하나의 상징으로만 제한하여 사용될 수 없음을 시사했다.

1963년 인디애나는 찰스 데머스가 그린 〈난 숫자 5의 모습을 금색으로 보았다〉(1928)를 보고 영감을 받아 〈데머스 미국인의 꿈 5〉(그림 97)를 십자가 형태로 그렸다.
이미 스튜어트 데이비스가 글자를 주제로 그린 적이 있지만 인디애나의 딱딱하고 단순한 형태의 글자와 숫자들은 네온사인과도 같은 빛을 발했다.
그는 숫자 5 외에도 EAT, LOVE, DEE 등 사람들에게 낯익은 글자들을 주제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1960년대에 성행하기 시작한 옵아트와 컬러필드 예술에 가까웠다.
나중에는 알루미늄을 사용하여 글자를 3차원으로 제작하면서 색을 칠했다.

워홀보다 세 살 어린 탐 베셀만은 워홀과 자주 만나면서 팝아트가 미국 미술의 주류가 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여인의 몸을 주제로 그리기를 선호한 그는 처음에는 워홀과 마찬가지로 만화를 그렸다.
베셀만은 신시네티 아트 아카데미에서 만화를 공부하고 1950년대 말 뉴욕으로 와서 쿠퍼 유니언으로 진학했다.
1961년부터 이미 〈위대한 미국사람들의 누드〉 연작을 그리기 시작해 애욕적인 느낌을 주면서 미국국기의 색이기도 한 빨강색과 파란색을 주로 사용했다.
베셀만은 마티스의 〈핑크 누드〉로부터 영감을 받아 〈핑크 누드〉와 비교가 되는 순진한 모델을 핑크 누드의 자세를 취하도록 한 후 에어브러시를 사용하여 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그렸다.
여인의 몸 부분을 확대하여 그리거나 콜라주를 사용한 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와 관련이 있으며 팝아트 예술가들에게 일반적인 환상주의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실제 물질들을 배열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TV와 에어컨디셔너가 있고 사진으로 창문을 몽타주하기도 했으며 소리를 작품에 사용하기도 했다.
베셀만은 담배를 피우는 여인의 손과 입술만을 커다랗게 담배연기와 함께 그렸는데, 그가 사용한 순색들은 애욕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여인의 포즈가 그러한 요소를 더욱 두드러지게 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부분을 확대하여 그림을 그렸지만 베셀만만큼 효과를 보여준 예술가는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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