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라우센버그는 워홀에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이제 워홀에게는 운이 트였다.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고대하던 워홀은 일레노 와드가 11월 6일로 전람회 스케줄을 정하자 들떴다.
그는 전람회 준비작업에 열중했는데 〈야구〉(1962)도 이때의 그림들 가운데 하나이다.
워홀의 친구들이 축하해주었고 헨리 겔드잘러는 워홀을 위해 자신의 아파트에서 파티를 열고 미술계 인사들을 초대하여 소개했다.
1962년 9월 18일에는 소나벤드 부부가 라우센버그와 스위스 예술가 칼 프레데릭과 함께 워홀의 화실을 방문했다.
파리에 화랑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던 소나벤드 부부는 파리에서 전람회를 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워홀은 환호하며 그동안 둘둘 말아놓았던 캔버스들을 꺼내 펴보였다.
마를린의 초상화와 코카콜라 병 210개를 그린 그림을 포함하여 여러 점이었다.
워홀이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를 구하여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궁금했던 라우센버그는 연신 워홀에게 질문하면서 그의 아이디어를 경청하려고 했다.
워홀은 라우센버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면서 평소보다 더욱 떠벌였다.
캔버스 끝에서 끝까지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 그리는 워홀의 방법은 라우센버그와 프레드릭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라우센버그는 워홀에게 이런저런 방법으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충고했고 워홀은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인사치레에 불과했지 사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워홀은 자신의 회화방법에 만족했으며 단지 새로운 팝 이미지만 찾을 뿐이었다.
워홀은 라우센버그에게 그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으로 뜨고 싶으니 사진을 한 장 보내달라고 했다.
라우센버그는 주로 실크스크린 기법에 관해 질문했으며 워홀은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가르쳐주었다.
워홀이 가르쳐준 기교는 나중에 라우센버그의 실크스크린 작품에 응용되었다.
이듬해 유태인 뮤지엄(Jewish Museum)에서 라우센버그의 전람회가 열렸을 때 폭이 988cm나 되는 실크스크린이 소개된 것만 보아도 실크스크린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라우센버그는 창의력 있는 예술가이고 워홀은 남의 것을 모방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했으므로 라우센버그가 실크스크린 작품을 소개하자 워홀이 라우센버그로부터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워홀》의 저자 데이비드 부르돈은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역설했다.
11월에 스테이블 화랑에서 열린 워홀의 전시는 기대했던 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일레노는 “전람회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워홀의 그림이 모두 팔렸다고 떠벌이면서 워홀을 ‘사랑스런 앤디(Andy Candy)’라고 불렀다.
전람회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헨리가 재스퍼 존스를 데리고 워홀의 화실로 왔다.
헨리는 워홀이 존스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존스를 만날 기회를 주려고 데려온 것이다.
존스는 워홀의 화실을 자세히 둘러보았지만 그의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비치해두고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워홀은 그날도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존스의 사진을 찍었고 존스는 그런 워홀의 행동을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미 라우센버그의 초상화를 제작한 워홀은 존스의 방문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려고 했다.
헨리가 존스에게 워홀의 그림들을 소개했지만 존스는 시큰둥했다.
“워홀과 존스 두 사람은 친구 관계로 진전되지 않더라”고 헨리가 나중에 말했다.
1978년 이후에는 존스가 워홀에게 예술가로서 존경심을 표하게 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워홀을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워홀은 원래 지성적인 사람이 못 되었던 반면 존스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서적을 읽고 늘 명상하면서 고상한 사고를 그림으로 나타내려 한 지성적인 화가였기 때문이다.
워홀의 화실에 있던 데이비드 부르돈은 존스가 간 후 “재스퍼는 여기에 온 것을 별로 탐탁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워홀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부르돈은 “네가 그림들을 꺼내 보여줄 때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니?”라고 말했다.
워홀은 존스가 라우센버그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예술가임을 그때 알았다.
부르돈은 1950년대 말부터 그리니치 빌리지의 지역신문 《빌리지 보이스 Village Voice》에 미술평론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부르돈은 워홀의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보고 워홀의 화실을 직접 방문해 “당신이 바로 수프 통조림을 그린 장본인입니까?”라고 물으면서 “난 당신을 상업미술가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제 화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상업미술에 관한 주제를 그리고 있군요. 당신 작품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런지 알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워홀이 부르돈을 좋아한 이유는 그의 지성에 찬 의심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워홀이 “팝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부르돈은 솔직하게 “난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는데 워홀은 그의 솔직함이 맘에 들었다.
그는 《워홀》이라는 책을 써서 워홀을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