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에게 전화해 곧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1962년 여름 일레노의 화랑에 소속된 알렉스 캐츠와 일레노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이 워홀에게는 행운이었다.
불화의 원인을 일레노는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서”라고 말했지만 사실 일레노는 캐츠의 행위를 괘씸해하면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레노가 화난 이유는 지난해 캐츠가 케네스 코치의 작품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의 무대를 장식했던 그림을 일레노의 라이벌 마사 잭슨에게 1,500달러에 팔아 6월 5일부터 30일까지 잭슨의 화랑에서 소개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일은 캐츠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잭슨과 일레노의 경쟁이 촉발한 사건에 캐츠가 말려든 것뿐이다.
일레노는 11월에 계획된 캐츠의 개인전을 취소하면서 캐츠를 그녀의 화랑 스테이블에서 쫓아냈다.
비쩍 마른 캐츠는 “시팔년!”이라는 말을 일레노의 면전에 던지고 화랑을 떠났다.
일레노가 스테이블에서 캐츠의 전람회를 열어준 것은 1960년 3월과 이듬해 2월 두 차례였다.
일레노와 결별한 캐츠는 1964년 피슈바흐(Fischbach) 화랑에서 전람회를 가진 이래 1970년까지 그곳에서 계속 전람회를 가졌다.
캐츠는 추상과 사실주의 사이에서 사실주의를 택하면서도 상업미술가 출신답게 추상적인 디자인의 독특한 그림을 그렸다.
사람을 주로 그린 그는 색을 평평하게 사용하고 선을 단순화했으며 사람들을 어떤 상황 속에 있도록 하여 시적이고 서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엷은 색을 넓게 칠했는데 컬러필드 예술가처럼 감성적 느낌이 나도록 색을 사용했다(그림 92).
항상 사람들이 편히 쉬는 장면, 파티, 피크닉, 개와 고양이가 노는 장면, 차 마시는 장면 등을 그리면서 사실주의에 기초한 추상을 소개했다.
퀸즈 뮤지엄 개관 25주년 기념 파티에서 필자는 캐츠를 보았다.
깡마른 그는 안내하는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주면서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다가 여자가 다이얼을 돌린 후 캐츠가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시팔(fuck)! 시팔!”이라고 말했는데 과연 뉴요커다웠다.
‘시팔’이라는 말을 할 줄 모르면 뉴욕커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70세가 된 캐츠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뉴요커에게 ‘시팔’은 욕이랄 수 없다.
1962년 어느 여름날 코네티컷 주에 있는 별장에서 발가벗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있던 일레노 와드는 문득 워홀을 떠올렸다.
그녀는 방으로 가서 전화번호 수첩을 찾아 워홀에게 전화해 곧 만나자고 했다.
화실에 도착한 일레노는 인사만 하고는 방안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그곳에는 커다란 켐벨 수프 통조림 그림, 코카콜라 병들을 수십 개 그린 그림, 〈네 자신이 해라〉(그림 93), 그리고 마를린과 엘비스의 초상화들이 있었다.
일레노는 “앤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11월은 연중에 가장 좋은 달인데 글쎄 그 달이 비어있지 않겠어? 그때 네 전람회를 열까 생각 중이야”라고 말했다.
워홀은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와우!”라고 소리쳤다.
캐츠의 퇴진은 워홀의 앞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