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의 개인전을 거절했던


가장 두드러진 팝아트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던 워홀의 시도는 적중했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타들의 초상화는 자연히 인기가 있었고 중개상들이 그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뉴욕에 있는 화랑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지 못한 형편인 그에게 아름다운 일레노 와드가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녀는 화랑이 좁다는 핑계로 워홀의 개인전을 거절했던 화랑주인이다.

일레노는 여왕벌처럼 행세하면서 명령하기를 좋아했으며 고급 옷을 입고 귀족처럼 우아한 폼을 잡았다.
이성적이지만 지나치게 따지는 타입으로 얼음처럼 차가운 데가 있는 그녀는 1940년대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담배를 피우면서 가끔 눈망울을 깜빡이며 매력 포인트를 과시하려 했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때는 곧잘 화를 냈다.
맨해튼에서 성장한 일레노는 광고기획 일을 한 적이 있고 파리에서 유명한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의 조수로 일하기도 했다.
1953년 뉴욕으로 돌아온 그녀는 센트럴 파크 남쪽에서 두 블럭 떨어진 7애비뉴에 과거 마굿간을 하던 곳을 세내 화랑을 열었는데 화랑의 이름을 마굿간(스테이블, Stable)이라고 불렀다.

일레노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하여 후원했는데 그녀의 안목은 남달리 정확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의 화랑에 소속된 예술가로는 조셉 코넬, 조안 미첼, 이사무 노구치, 로버트 라우센버그, 리처드 스탠키비츠, 시 툼블리가 있었다. 일레노는 1960년 화랑을 확장해 33 이스트 74번가에 있는 연립 주택 아래층으로 이사했으며, 세 예술가를 더 후원했는데 알렉스 캐츠, 로버트 인디애나, 그리고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마리솔이었다.

워홀의 미학적 조언자 디는 일레노와의 자리를 마련해 세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다.
디는 일레노에게 워홀의 전람회를 열어줄 것을 종용했다.
“자, 일레노.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네가 앤디의 전람회를 열어줄 것이냐 아니냐인데 앤디는 훌륭한 예술가야. 앤디는 전람회를 가져야만 해”라고 말했다.
워홀은 그때를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그 여자는 지갑을 꺼내 돈을 헤아려보더니 2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내게 주면서 ‘앤디, 당신이 이것을 그린다면 당신의 전람회를 열어주겠어’라고 말했다.

일레노가 자리를 뜨자 디는 그녀를 조심하라고 충고하면서 그녀는 라우센버그와 툼블리에게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노구치 같은 유명한 예술가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일레노는 그녀의 화랑에서 라우센버그의 그림을 소개할 무렵 화랑의 잡일을 하던 라우센버그에게 빗자루를 들고 화랑을 청소하도록 시켰다고 알려주었다.

워홀은 일레노의 화랑을 자주 방문해 근래 예술가들의 작품을 참조하는 동시에 무엇보다도 유능한 일레노와 마주치기를 기다리곤 했다.
워홀은 의당 그럴 수 있는 사람으로 출세를 위해서라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워홀의 켐벨 수프 통조림 그림을 본 일레노는 워홀을 재능 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여성적인 남자 동성애자에게 호감을 가지는데 소박하고 진지하며 어딘가 얼띤 데가 있는 워홀도 여성적인 성격의 동성애자였다.
일레노는 워홀이 마음에 들었지만 전시계획이 차 있어 곧 워홀의 전람회를 열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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