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워홀은 더욱 커다란 크기로
워홀은 더욱 커다란 크기로 실크스크린을 뜨기 시작했으므로 이제 옆에서 실크를 잡아주거나 실크가 접히지 않도록 도와줄 조수가 필요했다.
1963년 6월 어느 날 워홀은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뉴스쿨(New School)에서 개최된 시낭송회에 갔다가 갓 스무 살이 된 곱슬머리 시인 제라드 말랑가를 소개받았다.
브롱크스에서 태어나 와그너 칼리지를 졸업한 후 직장을 찾고 있던 말랑가는 워홀에게 자신은 실크스크린을 거의 전문가처럼 제작할 수 있다고 하면서 조수로 채용해 달라고 했다.
사실 3년 전부터 직물 디자인을 하기 위해 방과후 실크스크린 제작을 해왔던 말랑가는 다음날 워홀의 작업실에 나타난 그날부터 시간당 1달러 25센트를 받기로 하고 워홀의 조수가 되었다.
말랑가가 처음으로 한 일은 리즈의 초상화를 1m 정사각형으로 제작하는 일이었다.
수차례에 걸친 애정행각을 보여준 리즈는 근래에 병이 났으므로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하면서 100만 달러의 출연료를 받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더욱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리즈는 함께 〈클레오파트라〉에 출연한 미남배우 리처드 버튼과 사랑에 빠졌다.
흥행에 성공한 이 영화의 영향으로 많은 여자들이 클레오파트라 같은 모습이 되고자 했다. 거리에는 온통 머리카락으로 앞이마를 덮고 짙은 눈 화장을 한 클레오파트라 투성이었다.
말랑가는 워홀의 작업실에서 남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리즈의 초상화를 실크스크린으로 대량생산했다.
워홀은 말랑가에게 리즈의 다양한 포즈를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하게 하면서 그녀가 과거의 세 남편들과 함께 있는 장면도 제작하게 했는데 이러한 장면들은 모두 사람들의 관심거리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인생에 나타난 남자들〉은 그런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클레오파트라로 분장한 파란 리즈〉는 가발을 쓰고 클레오파트라처럼 분장한 모습의 리즈를 파란색으로 제작한 것이다.
마를린이 여성적인 성의 우상이었다면 남성적인 성의 우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꼽을 수 있다.
워홀은 마를린 초상화를 만들었듯이 가장 대중적인 슈퍼스타의 초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엘비스의 노래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했고 엘비스가 출현한 영화만도 여러 편 되었다.
엘비스는 노래를 부를 때 중풍에 걸린 사람처럼 다리를 떨었는데 그의 제스처를 태평로에서 구두를 닦던 소년들도 따라했다.
워홀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스타의 초상화를 자신의 특허품으로 만들었고 스타의 초상화는 그를 다른 팝아트 예술가들과 구별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