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김광우의 <마네의 손과 모네의 눈>(미술문화) 중에서

클로드 오스카 모네는 1840년 11월 14일 파리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던 아버지 아돌프와 어머니 루이스 쥐스틴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파리 9번구 라피트 가 45번지였고 부모 모두 파리에 정착한 2세대 파리인이었습니다.
클로드 오스카는 노트르담 드 로레트 성당에서 세례받을 때의 세례명을 줄여서 오스카로 불리웠습니다.
아돌프는 오스카가 다섯 살 때 서북 해안 노르망디의 르 아브르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 살던 누이 마리 잔 르카드르의 남편이 아돌프를 야채도매업에 끌여들였기 때문입니다.
르카드르는 선구업에도 관여하고 있었으며 르 아브르에 큰 저택을 갖고 있는 부자였습니다.

모네는 1851년 4월 1일 르 아브르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훗날 회상했습니다.

천성적으로 규율이 내몸에 맞지 않았다.
어렸지만 나는 어떤 규율에도 굽히지 않았다. …
학교는 감옥과도 같았으며 하루 네 시간 수업이었지만 내게는 대단히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학적부에는 “심성이 매우 착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모네는 일찍부터 캐리커처를 그렸고 나폴레옹 시절 궁정화가로 활약한 위대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문하생이었던 장 프랑수아 샤를 오샤르로부터 드로잉을 배웠습니다.
오샤르는 살롱전에 초상화와 풍경화를 출품한 적이 있으며 드로잉의 대가로 알려졌습니다.
오샤르로부터 수학한 예술가 중 샤를 륄리에는 르 아브르 미술학교 책임자가 되었으며 오통 프리에츠와 라울 뒤피도 이 학교 출신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기를 즐긴 어머니는 모네가 16살 되던 1857년 1월 28일에 타계했습니다.
그림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는 회화에 대한 아들의 집념을 우려했고 따라서 모네는 아버지와 불화했으며 어머니가 타계한 후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모네는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1858년 자식도 없이 과부가 된 마리 잔 고모는 조카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리 잔은 아마추어 화가로 쿠르베의 친구 화가 아르망 고티에의 친구였습니다.
조카가 회화에 재능이 있음을 안 고모는 지붕 밑 다락방을 작업실로 내주고 계속해서 드로잉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하며 그림재료를 사주었습니다.
그녀가 모네에게 화가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아돌프를 설득했습니다.
아돌프는 모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되 경제적 뒷받침은 해주지 않겠다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드로잉 솜씨가 훌륭했던 모네는 오스카 모네를 줄여서 ‘O. 모네’라고 서명한 풍자화를 문방구, 액자, 철물 등을 파는 상점에 내다 팔기 시작했으며 친지와 동네의 유지들이 그의 드로잉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20프랑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주었는데 훗날 과장해서 말했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초상화를 그렸다면 지금쯤은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이다!”

드로잉은 표구상 그라비에의 상점 진열장에 전시되었는데 상점 주인의 옛 동업자이자 화가 외젠 부댕의 작품과 나란히 전시된 적도 있었습니다.

외젠 부댕이 르 아브르에서 작업하는 일이 잦았으므로 모네는 그를 따라 바다와 들로 가서 그의 작업을 처음부터 완성될 때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활력과 신선함을 직접 캔버스에 담아야 한다고 한 부댕은 모네에게 “넌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넌 풍경화를 어떻게 드로잉하고 어떻게 색을 칠하는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야외에서 이젤을 세우고 자연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건 그 무렵에 막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1840년대부터 물감을 튜브에 넣을 수 있게 되어 물감 운반이 쉬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걸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고루한 화가들은 야외에서 직접 그리기를 꺼려했습니다.
화실에서 그린 그림과 자연에서 직접 그린 그림은 당연히 비교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생동감은 기억했다가 화실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동감을 느낀 바로 그 장소에서 그려야지만 그대로 관람자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몇 달 동안 부댕을 따라다니던 모네는 부댕의 작업에 호기심을 갖고 그의 화실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라 멀리까지 가서 함께 자연 경관을 그렸습니다.
모네는 자연히 스승의 회화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네의 초기 작품에서 부댕의 영향을 발견하기란 쉽습니다.

여든두 살 때인 1922년에 모네는 이때를 회상했습니다.

그 상점에 풍자화를 전시하곤 했는데, 그 덕택으로 르 아브르에서 다소나마 유명해졌으며 변변치는 못하더라도 수입이 생겼다.
게다가 외젠 부댕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때 서른 살 안팎이던 그는 막 화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
부댕의 제의를 받아 나는 그와 함께 야외로 가서 작업했다.
물감 한 통을 사들고 둘이서 루엘(르 아브르 동북쪽)까지 갔다. …
그는 이젤을 세운 후 작업에 몰두했다. …
그제서야 베일이 걷히듯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화가로서의 나의 운명이 눈 앞에 전개되었다.
이제 내가 한 사람의 화가가 되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면 이는 부댕의 덕분일 것이다. …
그는 너무도 자상하게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서서히 눈을 뜨게 되었으며 자연을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1858년에 그린 <루엘 풍경>은 부댕의 가르침을 받아 그린 것으로 모네가 야외에서 그린 첫 풍경화인 이 작품을 그해 8월과 9월 르 아브르 전시회에 출품했습니다.
모네를 가리켜서 “하늘 묘사의 왕”이라고 극찬한 부댕은 모네에게 자연을 탐구할 것을 누누히 가르쳤습니다.
모네는 부댕을 통해 눈이 점차 열리며 자연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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