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실크스크린은 누가 시작했나
워홀에게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실크스크린이 그에 의해 처음으로 예술에 사용된 것은 아니다.
실크스크린은 원래 상업용으로 활자 인쇄와 장식적 인쇄에 사용되었고 포스터를 대량생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실크스크린이 순수미술에 도입된 것은 경제공황기부터였다.
공황을 타계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뉴딜 정책에는 가난한 예술가들을 구제하는 정책도 있었다.
정부는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라는 기구를 두고 예술가들을 고용하여 주급을 지불하면서 대중들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예술’이 시작되었다.
예술가들은 도서관과 공항 그리고 공공건물에 대중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주제를 택해 벽화를 그렸으며 몇몇 예술가들은 작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실크스크린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크스크린을 순수미술에 도입한 예술가로 가이 맥코이와 앤소니 벨로니스 두 사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두 사람은 1930년대에 이미 실크스크린을 제작했을 뿐 아니라 실크스크린 기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쇄에 취미가 있는 일반 사람들도 실크스크린을 프린트할 줄 알게 되었다.
워홀이 실크스크린을 제작하기 훨씬 전부터 실크스크린은 순수미술의 문턱에 와 있었지만 1940년대까지만 해도 오일이 함유된 잉크를 사용해야 했으므로 색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하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였다.
실크스크린에 의한 특기할 만한 첫 전람회가 1940년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 뮤지엄(Springfield Museum of Fine Arts)에서 열렸다.
얼마 후 뉴욕의 상업화랑 웨이히(Weyhe)에서 전람회를 가진 지그로서는 카탈로그에서 실크스크린을 순수미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크스크린이라는 말 대신 세리그래프(serigraph)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세리(seri)는 그리스말로 실크라는 뜻이고 그래프(graph)는 쓰다(writing) 또는 드로잉(drawing)이라는 뜻이다.
그는 얼마 후 필라델피아 뮤지엄 판화부의 큐레이터로 선출되고 나서 기술혁신에 관해 글을 썼는데 초기 실크스크린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현재 인정받고 있다.
그러므로 실크스크린은 워홀의 창작이 아니며 새로 등장한 예술재료도 아니다.
여기서 예술이란 누가 시작했느냐보다는 어떻게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